‘한국형 차기 구축함 입찰비리’ 의혹 수사 확대

2024-07-23 13:00:33 게재

경찰 “전 방사청장 조만간 소환”

추가 관련자 1명 입건·압수수색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입찰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조만간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을 소환할 예정이다. 왕 전 청장은 입찰 과정에서 특정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경찰은 왕 전 청장 외에 관련자 1명을 추가로 입건하고 수사를 확대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왕 전 청장을) 조만간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왕 전 청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입건했다. 왕 전 청장은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측에 유리하도록 방사청 내부 규정을 바꿨다는 혐의를 받는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기밀을 몰래 촬영해 보관한 혐의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 적발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방사청은 입찰공고를 내기 8개월 전인 2019년 9월 ‘제안서 평가 업무 지침’ 일부를 고쳐 방위산업기술 유출과 관련해 방첩사령부의 처분 통보를 받으면 0.5~1.5점을 깎도록 돼 있던 규정이 삭제됐다.

또 감점 적용 기간도 2년에서 1년으로 변경됐고, 형사처벌 시 받는 감점도 3점에서 1.5점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총 100점 만점에서 0.056점 차이로 선정됐다. 감점 규정이 유지됐다면 결과가 뒤집힐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방사청은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규정을 바꾼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관련 수사를 시작했고 지난해 8월과 12월에 압수수색했다.

특히 경찰은 최근 KDDX 입찰 비리 의혹과 관련해 1명을 추가로 입건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해당 인물은 현대중공업이나 방사청과 관련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수본은 “다른 사항에 대한 고려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경찰 수사가 연내 발주할 3단계 사업 입찰에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3단계 사업자 선정도 1·2단계와 마찬가지로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수주전이 치열하다.

통상 함정 건조는 1단계 개념설계, 2단계 기본설계, 3단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4단계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개념설계는 함정 초안을, 기본설계는 함정에 탑재되는 무기체계와 각종 장비 등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이다.

개념설계는 한화가, 기본설계는 현대중공업이 각각 수주해 수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사업 단계마다 경쟁입찰을 하지만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예외적으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수의계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현중이 3단계 사업도 수주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을 문제 삼아 ‘경쟁입찰’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KDDX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해군의 차세대 주력 함정이다. 방사청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6000톤급 KDDX 6척을 발주한다. 총사업비는 약 7조8000억원 규모다.

이 사업은 선체부터 각종 무기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이 때문에 선도함 건조를 맡은 업체가 사실상 차세대 구축함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양측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화오션측은 "관련 법률상 명백히 경쟁계약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고, 방위사업관리규정도 '예외적' 수의계약을 규정한 것일 뿐 '해당 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불법취득한 사정'은 수의계약을 체결해서는 안되는 대표적 사유"라고 주장했다. 이어 "방위사업청이 상세설계를 수의계약으로 추진한다면 현재 현대중공업에 적용 중인 보안감점 적용을 무력화 하는데 적극 협조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면서 "기본설계에서는 규정을 삭제해 보안감점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고, 상세설계에서는 보안감점 적용을 회피하게 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문제될 소지가 높은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보안사고와 관련해, 지난 2월 27일 방사청이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고 현중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을 심의했고, 심의 결과 부정당업체 제재처분에 해당하지 않는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면서 “즉, 특별한 사유 또한 존재하지 않게됐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기본설계를 수행한 현중이 수의계약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고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장관이 위원장인 방추위를 열어 KDDX 사업추진기본전략에 대한 개정을 해야할뿐만 아니라, KDDX 기본설계 수행 사업자인 현대중공업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사청은 일부 언론에서 이미 사업자 선정 방식을 끝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자 “구체적인 사업추진 방안을 확정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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