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근로자 잇단 승소

2024-07-26 13:00:37 게재

대법, 10년만에 한국지엠 불법파견 일부 인정

현대제철·현대차·아사히 비정규직 등 승소

불법파견 하청 근로자에 대해 본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제철 순천공장 비정규직, 5월 현대차 비정규직, 6월 현대차 남양연구소, 지난 11일 아사히 비정규직에 이어 25일에는 한국지엠과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부분 소송이 시작된 지 수년이 지난 뒤에 나온 판결이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잇따라 승소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5일 한국지엠 창원·부평·군산공장 1·2차 사내 하청 업체 비정규직 총 128명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불법파견 대법원 선고 입장 기자회견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 비정규직 불법파견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비정규직회 소속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원고들이 한국지엠으로부터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파견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지엠을 실질적인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소송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노동조합이 2005년 1월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내면서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창원공장 비정규직 843명 전원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 파견법 위반 혐의로 한국지엠 사장과 하청업체 대표를 고소했다. 이들은 2013년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에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는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이에 금속노조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06명과 비조합원 22명 등 총 128명은 2015년부터 원청을 상대로 세 차례에 나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사실상 원청의 지휘를 받으며 작업했으므로 파견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사내하청업체가 담당할 공정이나 작업위치를 결정했고 자동차 생산 계획에 맞춰 생산량, 시간당 생산 대수, 작업 일정 등을 결정함으로써 원고들의 작업량, 작업순서, 작업속도, 작업시간 등을 사실상 결정했다”며 “원고들이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된 후 사측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자동차 생산 업무에 종사했으므로 파견법이 정한 파견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2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피고가 직접적인 작업배치·결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파견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2차 협력업체가 하도급받은 공정 업무는 원청의 업무와 구분돼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도 원고 일부승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날 공교롭게도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가운데 나온 대법원 판결도 주목을 받았다. 이 후보자가 서울고법에서 근무할 당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을 일부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5일 현대차 울산공장 1·2차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3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으로부터 직접 업무 지휘 등을 받는다며 현대차 소속 노동자라는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2016년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인원이 많아 사건을 2개로 나뉘었고, 1심에서는 모두 노동자 승소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에서도 사건은 나뉘어 진행됐다. 이중 서울고법 민사1부는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청구는 기각했지만 1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청구는 모두 인용했다. 반면 이 후보자가 재판장으로 있었던 서울고법 민사15부는 노동자 32명 중 직접 생산 공정에서 근무한 8명을 제외하고 모두 패소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1·2차 하청업체나 간접 생산 등 공정 구분 없이 근로자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해 부두 수송 업무를 담당한 2명을 제외한 30명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는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여러 간접 사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판단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 부분은 내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불법파견 관련해 잇따라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현대제철 순천 비정규직이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았고 이어 5월 현대차 비정규직, 6월 현대차 남양연구소, 지난 11일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들도 쟁점이 비슷한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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