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중재자-당파 지도자” 국회의장 역할은?
당적이탈 의무화 … 중립적 모델 채택
여야 “자기 정치·당파 운영” 공세 빈번
방송법 의결에 앞서 무제한 토론이 진행된 28일 새벽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사진행에 앞서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부의장의 본회의 사회권 거부를 질타했다.
우 의장은 “국회의원 주호영이 방송4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이 국회부의장 주호영이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는, 직무를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 부의장은 여당의 반대에도 우 의장이 방송4법을 본회의에 회부한 점 등에 반발해 본회의 사회권을 거부했다.
우 의장은 “자당의 이익 때문에 국회의장단까지 갈등이 생기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했다. 이에 앞서 우 의장은 지난 17일 ‘야당의 방송4법 입법을 잠정 보류하고 정부와 여당은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작업을 중단하되, 여야가 참여하는 범국민협의체를 통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안했으나 여당의 거부로 추가 협의가 불발됐다.
여야 갈등이 첨예화 되면서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의 요구가 번번히 묵살되는 장면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의장을 대상으로 한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되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다.
2002년 국회법 개정으로 의장의 당적이탈을 명문화 하면서 중립적인 의장모델을 채택한 여야가 입맛에 따라 “자기 정치에 주력한다” “편파적으로 운영한다”며 의장을 공격하기 일쑤다. 중립적인 중재자를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론 당파적 지도자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국회의장의 역할 갈등과 관련한 논점을 정리해 눈길을 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7월26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국회로 분류되는 13대 국회 이전 국회는 의장의 권한을 대통령의 종신집권과 집권당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활용했다.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당선된 의장은 날치기 입법이나 야당총재 제명 등에 사용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다수당의 다선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는 전통이 확립됐지만 중립적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어지고 있다.
16대 국회(2002년)는 국회법 개정을 통해 ‘의장은 선출과 동시에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제헌국회 이래 군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의장이 집권당과 대통령의 이해에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러나 ‘무소속 국회의장’ 등장 이후에도 국회의 여야는 의장을 중립적인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소수당은 ‘다수당 위주의 편파 운영’을 지적하고, 다수당은 ‘의장이 자기 정치를 한다’며 날을 세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6대 국회 후반기 이후 현재까지 12명의 의장 중에 10명(83.3%)의 의장에 대해 사퇴촉구 결의안이 제출됐다”면서 “국회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성을 어겼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13대 국회 이후 19명의 의장 중 14명(73.7%)의 의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고, 17대 국회 이후에만 보면 1인을 제외한 모든 의장(90.9%)에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입조처는 “법적으로 의장의 당적보유를 금지한다고 해서 국회의장직이 중립적인 중재자로 인식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의장의 제도적 권한도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변화했다. 제4~5공화국에서 의장단독으로 행사하도록 돼 있던 권한의 상당부분이 6공화국에 와서 원내대표·국회운영위와 협의하도록 바뀌었다.
입조처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에서 당파적 의장의 전횡을 경험한 국회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만 해도 2012년 5월 국회법 개정으로 천재지변·국가 비상사태·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합의 등으로 제한됐다.
입조처는 당파적 리더로 기능하는 미국 하원의장과 중립적 중재자 역할에 초점을 맞춘 영국 하원의장 모델을 비교하면서 우리 국회법은 영국 하원에 가까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매 국회마다 제2당이 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사퇴권고 결의안을 제출하는 정치현실을 감안하면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간극을 좁히는 방안으로 ‘다수당 대표형 의장 모델’을 언급하기도 한다. 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를 삭제하고, 의장에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도록 되어 있는 의사운영과 관련된 조문들을 의장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21~22대 국회와 같이 야당 절대우위의 상황에선 국회와 대통령의 행정부 권력의 충돌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야의 이해관계를 압도할 만한 사회적 공감대와 압력이 형성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