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린바이오산업 키울 토대 ‘농업미생물은행’

2024-08-01 13:00:03 게재

이상재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장

은행은 개인이 저축한 돈을 필요한 기업에 빌려주고 투자로 연결하는 자금 중개 기능을 수행한다. 농업 분야에서는 미생물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농업미생물은행’이다. 농업미생물은행은 유용한 농업미생물을 수집·보존하고 필요한 곳에 분양·공급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업 발전을 돕는다.

작을 ‘미’(微)를 쓰는 미생물은 이름 그대로 해수 1㎖당 100만 마리, 토양 1g당 10~100억 마리가 있을 만큼 작지만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생명체다. 현재까지 인류가 배양해 낸 미생물은 3%에 불과하고, 나머지 97%는 실물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아직 알지 못한다.

농업에 있어 미생물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토양 환경을 개선하고 작물 생육을 촉진해 수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여준다. 작물 면역력을 높여 병해충 피해를 줄여주고 농약이나 화학비료 사용량도 줄여준다. 또한, 기후변화로 늘어난 고온, 가뭄 등의 극한 환경에서 작물 피해를 감소시켜준다.

최근 미생물이 농식품 분야 고부가가치 신산업인 ‘그린바이오산업’의 주요 분야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미생물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린바이오산업은 미생물 등 농업생명자원에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신소재 등을 개발하는 부가가치 창출 산업이다.

농촌진흥청은 미생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용한 농업미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노력의 하나로 1995년 ‘농업미생물은행’을 설립했다. 농업미생물은행은 2021년 국가 미생물 클러스터 중앙은행으로 지정돼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세계 최초의 미생물은행은 1890년 독일에 설립된 ‘크롤 컬렉션’(Král collectio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한국종균협회 부속 한국미생물보존센터를 미생물은행의 시초로 본다. 우리나라 미생물은행의 역사는 외국보다 늦은 편이나 중국 미국 벨기에 일본 인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많은 미생물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올해 7월 기준 농업미생물은행 보유 자원 수는 2만8000여점이다.

이렇게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대학, 산업체, 지방농촌진흥기관 등에 분양·공급해 새로운 연구와 기술개발, 다양한 신소재 등의 개발에 활용된다. 매년 3000여점의 자원이 분양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누적 분양 자원 수는 6만여점에 달한다.

미국 타임지는 세계를 변화시킬 10개 아이디어 중 하나로 모든 생물자원은행을 통칭하는 ‘바이오뱅크(Biobank)’를 선정한 적이 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전 세계 그린바이오 시장 규모는 2017년부터 연평균 7.4%씩 성장해 2030년에는 3226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러한 그린바이오 성장에 발맞춰 지난해 2월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고, 오는 2027년까지 국내 산업 규모를 10조 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농촌진흥청은 그린바이오산업의 육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양’보다 ‘질(가치)’에 중점을 둔 미생물자원의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또 보유 미생물자원을 세밀하게 분석해 분양을 확대하고 이를 활용해 관련 기관에서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해나갈 예정이다.

그린바이오시대, 농업미생물은행이 마이크로바이옴이나 합성생물학 등 새로운 분야에 기여해 미래 신산업을 이끌어갈 든든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상재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