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닛케이 주가지수 대폭락…‘우에다 원죄론’ 두고 논란
추가 금리인상 매파적 발언으로 금융시장 흔들어
우치다 일본은행 부총재 항복선언으로 체면 구겨
“앞으로 경제·물가동향이 이번 결정 재평가할 것”
일본 경제주간지 분석
지난 5일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평균지수가 전장 대비 12.4% 대폭락하면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원죄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둘기파적인 금융완화정책을 고수하다 갑자기 매파로 돌변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일본은행 부총재가 나서 당분간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 항복선언하면서 시장이 일단 진정됐지만 우에다 총재 체면이 크게 구겨졌다는 평가다.
일본 유력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8일 ‘주가 대폭락은 우에다쇼크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리와 향후 전망을 내놨다. 다음은 도요게이자이 칼럼 요약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인상폭은 불과 0.15%p에 그쳤지만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달 5일 도쿄증시에서 닛케이평균지수는 역대 최대폭인 4451포인트(12.4%) 폭락하고,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증시를 강타했다.
이번 주식시장 대폭락은 여러 요인이 겹쳐 일어났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에다 쇼크’로 평가받는다. 이번 일본은행 정책결정과 시장의 반응을 시계열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결정을 내린 때는 7월 31일이다. 이날 닛케이지수 종가는 전날 대비 575.87포인트 상승으로 마감했다. 이미 회의 전부터 인상 가능성이 예상 시나리오로 거론됐고, 주식시장에서는 매도 우위 재료가 다 나오면서 매수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서도 엔화 가치가 상승했지만 아직 달러당 152엔대를 유지했다. 이 때까지 이번 결정이 이렇게까지 시장에 충격을 줄 요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31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우에다 총재의 기자회견이다. 지금까지 비둘기파적 성향을 보여온 우에다 총재가 이날 회견에서는 “마치 사람이 변한 것과 같이 매파로 돌변했다”(시장 관계자)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준금리 0.5%는 벽으로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한 우에다 총재의 발언은 향후 지속적인 금리인상 시그널로 받아들여졌고,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8월 2일 미국 고용통계가 발표되고, 미국 경제가 침체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마침내 8월 5일 역사적인 주식시장 대폭락이 일어났다. 정리하면, 우에다 총재의 매파적 회견에 미국 고용통계 부진, 올 들어 급등한 닛케이지수의 기술적 조정 등이 겹치면서 일어난 금융시장 발작이 본질이다.
복수의 요인이 겹쳤다고 해도 우에다 총재 회견이 폭락으로 연결되는 트리거가 됐다는 점에서 이른바 ‘우에다 쇼크’로 불릴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대폭락의 주범으로 역사에 ‘악명’을 남길 것인가는 결국 매파적인 모습으로 급변한 정책 운용이 타당했는지 문제로 귀결된다. ‘인플레 파이터’로서 물가 목표를 달성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나간다면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에다 총재가 매파적으로 급변한 이유를 추측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역대급 ‘초엔저’였다. 엔·달러 환율은 7월 초 달러당 162엔대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끊기 위해 7월 11일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매도했다. 당시 외환시장 개입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엔저 흐름을 늦추는 정도의 ‘수동적 개입’이 아니라, 엔화 가치를 일거에 끌어올리는 ‘능동적 개입’이었다.
일본은행도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에다 총재는 지난 4월 말 회견에서 ‘엔저를 용인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해 엔저를 가속화시킨 전과(?)가 있다. 우에다 총재는 당시 기시다 총리 호출로 단둘이 만나 엔저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점을 약속하기도 했다.
엔저를 가속화시킨 4월 말 우에다 총재 회견을 내부 간부가 ‘대실패’라고 규정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일본은행은 추가 금리인상으로 매파적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우에다 총재는 확실한 매파적 모습을 연출해 엔고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당초 상정했던 것과 달리 이러한 태세 전환이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는 점이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에 따른 주식시장의 일부 조정을 예상했지만 5일 대폭락으로 정부도 동요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가 나서서 시장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7일 강연에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면해서 현재 수준의 금융완화를 확실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우에다 총재의 매파적 모습을 해소하려고 우치다 부총재가 나선 셈이다.(일본 언론은 사실상 항복선언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치다 부총재 발언으로 닛케이지수는 다시 반등에 성공했다. 엔고 흐름도 꺾이고, 금융시장 안정도 회복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일본은행과 우에다 총재가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주가는 경기의 선행지표이고, 닛케이지수 대폭락과 미국 고용지표 악화에 따른 미국 증시 급락 등은 향후 경기악화 조짐을 보여주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경제동향과 물가전망을 통해 금융정책을 운영해야 한다. 금융정책의 변경이 경제와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금리인상으로 향후 6개월에서 1년 사이 경기가 빠르게 악화하지 않는다면 정책적 실패였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경기악화를 피해갈 수 있다면 주식시장은 추가적인 상승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이번 주가 대폭락은 추가적인 금리인상에 복수의 요인이 겹쳐서 일어난 일시적 과잉반응으로 간주될 것이다. ‘우에다 쇼크’라는 단어는 남을지 모르지만 경기악화를 피하고 일본은행의 전망대로 물가가 목표치인 2%를 달성해 경제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우에다 총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우에다 총재의 운명은 원인이 무엇이든 향후 1년 정도의 경제 및 물가동향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