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트래블카드 퍼주기 혜택 원천은 외화예금

2024-08-14 13:00:02 게재

환전 수수료 무료, 할인 등 출혈 경쟁

한은 “사실상 무이자 예금으로 수익내”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이른바 ‘트래블카드’ 수익 원천은 고객이 맡겨놓은 외화예금이다. 환전 수수료가 없고, 트래블카드로 해외에서 현금 인출하거나 상품을 구매할 때 수수료 면제 및 할인 혜택이 많아 출혈 경쟁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외화예금이 가지는 수익성 개선효과도 뚜렷하다는 평가다.

서울시내 한 은행ATM 기기에서 시민이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주로 금융지주사 은행과 카드사가 협업해 운용하는 이 카드는 2022년 하나금융이 처음 출시했다. 올해 초 신한금융이 뛰어 든데 이어 KB금융과 우리금융, NH농협금융도 은행 및 카드계열사를 통해 속속 관련 상품을 내놨다. 올해 7월 말 기준 가입자는 650만명을 돌파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여행에 특화된 이 카드가 인기를 얻는 데는 각종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외화로 환전할 때 수수료가 무료다. 지금까지 주요 은행들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환전 수수료를 할인해 주기는 했지만 이를 전면 무료화한 것은 이례적이다. 은행권이 비이자 이익을 제외한 수수료 수익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환전 수수료를 없앤 것은 계좌관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파격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이 카드로 해외에 나가 ATM기기 등에서 현금 인출을 할 때도 수수료 무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사 카드별로 차이는 있지만 각종 혜택도 푸짐하다. 국내외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할인 혜택은 물론 공항 라운지 무료 사용 등도 가능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을 다수 유치하고, 많이 사용할 수록 손해보는 구조여서 이 상품을 만들 때 상당수 은행은 내부에서 반대도 심했던 것으로 안다”며 “특히 환전 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주는 조치는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사가 손해만 보는 장사를 할리가 없다. 원화 예금과 달리 외화예금은 해외에 나가서 사용하거나 다시 원화로 환전하지 않는 이상 계좌에 그대로 남아있다. 은행들은 이 외화예금에 대해 사실상 무이자로 상당한 기간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미국과 같이 금리가 높은 경우 달러예금에 대해 2% 안팎의 이자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엔화예금 등은 이자가 아예 없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화예금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업에 비해 크지 않다”면서도 “기업은 필요시 인출과 송금이 수시로 이뤄지지만 개인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생 자녀에 대한 송금 등을 빼면 상당기간 예금으로 예치해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거주자외화예금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의 이러한 수익구조 배경을 뒷받침하고 있다. 보고서는 “금리가 0%에 가까운 요구불예금 비중이 전체 외화예금의 2/3 가량을 차지한다”며 “달러화 금리가 높을수록 은행이 외화를 차입하는 것과 비교해 조달금리를 평균 0.1%p에서 4.1%p까지 낮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이 필요한 외화를 현지 금융기관 등에서 차입하는 것보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인 요구불예금으로 확보하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의 주요 외화조달 원천은 외화예금이 2009년 말 17.8%에서 지난해 말 40.5%로 급증했다. 이에 비해 외화차입금 비중은 같은 기간 43.2%에서 19.6%로 급감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외화예금 비중이 늘어날수록 △외환시장 불안정 등 위기시에 강한 외화자금 기능 △국내은행 외화자산과 부채 구조의 개선 △차입금보다 낮은 조달금리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국인의 체크카드 해외 사용금액은 지난해 1분기 11억200만달러에서 올해 1분기 기준 12억8800만달러로 16.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 해외 사용금액은 34억9900만달러에서 38억9300만달러로 11.3% 늘어났다. 지금까지 신용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하던 것에서 환율이 낮을 때 외화예금에 넣어둔 돈을 트래블카드로 사용하는 비중은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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