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논란

2024-08-20 13:00:05 게재

일본서도 규모·실체 등 데이터 제한돼 해석 분분

국내 전문가 “20조달러는 과도, 1~4조달러 수준”

닛케이 "역대 세차례 엔캐리 트레이드 붐 있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최근 금융시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다. 지난 5일 일본과 한국, 대만 주식시장을 초토화시킨 주범의 하나로 꼽히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화두가 됐다. 일본에서도 이번 주식시장 대폭락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체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엔캐리 트레이드가 주가 폭락의 범인인가’라는 보도에서 “누적된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고를 불러오고, 주가가 폭락했다는 분석이 많다”면서도 “구체적인 거래 규모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정부와 일본은행 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의 엔이 달러 등으로 바뀌어 거래되고, 얼마나 청산돼 다시 엔화로 환전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본 언론은 엔캐리 자금의 규모를 일부 짐작할 수 있는 데이터로 세가지를 주목하고 있다.

첫째, 일본은행이 발표하는 외국계은행 일본내 지점의 자산 현황이다. 해외 투기세력 등은 대체로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엔화를 빌려 이를 환전해 투자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13조5000억엔(약 920억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1월 대비 약 두배로 증가했다. 엔화 대출이 늘고, 그만큼 해외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산되는 데이터이다.

둘째, 국제결제은행(BIS)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엔화 표시 대출 관련 데이터도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외환시장 선물거래도 하나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CFTC 발표에 따르면 투기세력의 엔화 순매도는 계약 건수를 기준으로 지난달 2일 18만4223건에서 이달 6일 기준 1만1354건으로 급감했다. 그만큼 엔화를 팔려는 거래가 줄고, 매수 포지션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지난 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41엔대까지 하락하는 등 엔화가치가 급등했다. EPA=연합뉴스

골드만삭스는 이러한 데이터를 기초로 “엔캐리 트레이드의 90% 정도는 청산됐다고 할수 있다”면서 “다만 선물시장 이외의 포지션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금 더 청산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JP모건은 75% 정도 청산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개인투자자에 의한 외환거래증거금(FX) 거래에서 엔 매도 포지션이 청산되면서 엔고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전문가도 규모와 거래방식 등이 모호한 앤캐리 자금의 청산이 이번 주가 대폭락의 핵심 원인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학부 교수는 “도이체방크가 오래전부터 20조달러 규모라고 추산했지만 과도한 분석이고, 많으면 1조~4조달러 수준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면서 “나갔던 엔화가 다시 환류하려면 일본 10년 국채금리가 1.5%는 되어야 한다. 지금은 일부 청산도 있지만 일부는 나가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캐리 트레이드가 역사적으로 세차례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과거 30년간 엔캐리 거래는 팽창과 붕괴를 반복해 왔다”면서 “이번이 3번째 붐으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전쟁, 미일간 금리 차이 등이 불러왔다”고 했다.

신문에 따르면, 1차 붐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다.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등 헤지펀드와 금융기관이 모두 엔캐리 거래를 했다. 특히 LTCM은 낮은 금리로 조달한 엔화 자금으로 러시아 국채 등을 대량으로 매입했다 파산한 사례도 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엔화가 계속 하락하자 당국 차원의 협조를 통해 1998년 6월 시장에 개입했지만 엔화 매도는 멈추지 않아 달러당 147엔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2차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전후다. 미국은 2006년까지 정책금리를 계속 올려 2년만에 연 4%까지 상승했다. 유럽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금리를 인상했지만, 일본만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과 일본의 금리차가 확대하면서 엔캐리 거래가 급증했다. 미즈호은행 관계자는 “당시 유럽에서는 엔화 표시 주택론까지 빌려 투자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엔캐리 거래의 수익성이 높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1, 2차 엔캐리 트레이드는 LTCM 파산과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급격한 청산 과정을 거쳤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3차 엔캐리 트레이드도 지난달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추가인상과 9월 미 연준의 인하로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청산과정을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청산과정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 이를 통해 주가가 폭락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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