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SEC ‘불법자전거래’ 맥쿼리 1천억 제재…국내도 증권사 제재 중
투자손실 다른 고객에게 전가, 강력 조치
증선위, 국내 9개 증권사 일괄 제재할 듯
미국에서 불법자전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투자자문사 맥쿼리가 8000만달러(약 1060억원)의 제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9개 증권사가 불법자전거래로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고 현재 제재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금융회사가 투자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시킨 사건으로, 금융당국의 엄단 의지가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법체계로 인해 제재 수위는 다른 상황이다.
2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호주 맥쿼리 그룹의 미국 내 자회사인 맥쿼리 투자자문에 대해 불법자전거래 혐의로 8000만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SEC는 맥쿼리가 운영 중인 금융상품에 편입된 저유동성 채권의 시가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이용해 불법 내부·딜러 개입 거래를 통해 투자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했다고 밝혔다.
맥쿼리는 2017년 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주택저당증권(MBS), 미 국채선물, 기관담보 모기지채권(CMOs) 등 고정금리 상품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을 운용했다. 등록상품에는 등록펀드 11개와 비등록펀드 9개 등 총 20개의 펀드가 자금을 투자했다.
해당 금융상품에는 채권의 이자율만을 지급하는 기초자산(CMO)이 포함돼 있었으며, 대부분의 관련 CMO가 거래단위 미만 보유 등으로 인해 환금성 및 유동성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맥쿼리는 환매가격 설정 등을 위해 매일 금융상품의 공정가치를 산출해야 했으며 이를 제3의 평가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문제는 CMO 금융상품들은 주로 거래단위 규모 거래시를 상정하는 시가 기준으로 평가됐고 거래단위 미만의 경우는 유동성이 낮아 상당 폭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음에도 맥퀴리는 이를 무시했다.
맥쿼리는 금융상품에 포함된 수천 개의 관련 CMO 상품들이 상당히 고평가됐음을 알면서도 비등록 펀드의 환매요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관련 CMO를 다른 등록펀드에 고평가된 가격으로 매각해 다른 투자자에게 손실을 부당하게 전가했다.
SEC는 이번 제재에 대해 “불법적인 자전거래를 통해 공모펀드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9개 증권사가 채권형 랩·신탁을 운용하면서 특정 고객 계좌의 손실을 다른 고객 계좌로 전가하는 방식의 불법자전거래를 벌인 것으로 금감원 검사결과 드러났다.
증권사들이 법인 거액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제시했고, 수익률 달성을 위해 다른 증권사와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KB증권과 하나증권에 대해 일부 영업정지 3개월을 의결했다. 채권형 랩·신탁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에 대해서도 직무정지와 감봉 등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홍구 KB증권 대표 등 감독자에 대해서는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 조치가 결정됐다. 이 대표는 불법 자전거래가 벌어질 당시 WM영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어서 감독 책임이 부과됐다.
KB증권과 하나증권은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의결 등을 거쳐 최종 제재가 확정될 예정이다.
다른 7개 증권사에 대해서는 금감원 제재심이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이달 12일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교보증권·유진투자증권·SK증권·NH투자증권 등 6곳에 대해 제재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물리적인 시간 부족으로 인해 유안타증권은 논의 대상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금감원은 국정감사 이후인 내달 말 다시 제재심을 열 예정이다.
증선위는 금감원 제재절차가 끝난 KB증권과 하나증권과 함께 나머지 7개 증권사에 대한 금감원 절차가 끝나는 대로 9개 증권사 전체에 대한 제재를 일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제재가 확정되는 시점은 연말이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업무 영업정지 등의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과징금 부과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십억원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매쿼리에 대해 1000억원 이상의 제재금을 부과한 미국과는 차이가 크다.
금전제재 규모가 큰 미국의 경우 이사회와 주주들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은 금융당국이 신분제재를 하지 않으면 직접 경영진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처럼 대규모 제재금이 부과될 경우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재발 방지 차원에서도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