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지운 불법촬영물 27만건 달해
삭제요청 해마다 증가 … 국회 입법조사처 “전담 대응 ‘컨트롤타워’ 세워야”
최근 5년간 피해자들이 삭제를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물 가운데 27만건이 삭제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 떠돌고 있어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를 전담 대응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5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지원 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는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삭제 요청을 받은 불법촬영물 93만8000건 가운데 29%(26만9000건)를 아직 지우지 못했다. 삭제요청 건수는 2020년 15만6000여건에서 2021년 16만6000여건, 2022년 20만6000여건, 2023년 24만3000여건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삭제율은 2020년 37.3%에서 2021년 25.3%, 2022년 24.4%로 낮아졌다가 지난해 31.2%로 반등했다.
특히 올들어서는 삭제요청 건수가 상반기에만 16만5000여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상반기 미삭제율은 25.6%를 기록했다.
또 국제공조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디성센터의 국제협력을 통한 삭제 현황은 2023년 165건, 2024년 4390건에 불과하다. 디성센터는 현재 유일하게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와 업무협약을 통해 삭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디성센터가 직접적으로 삭제와 차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는 데다가 관련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또 디성센터의 물리적 한계도 지적됐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도 디성센터에 대한 독자적인 기관으로서의 근거규정이 없어 삭제·차단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과 피해자 지원업무의 지속성, 효과성의 문제가 지적됐다.
현행법상 불법영상물 삭제 주체는 인터넷사업자이고 삭제와 차단 명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내려진다. 디성센터에는 직접적인 삭제·차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특히 서버가 외국에 있는 역외 사업자의 경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삭제요청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디성센터는 ‘성폭력방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삭제지원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 기관운영, 인력, 예산지원이 명시돼 있지 않다. 특히 지역에서 삭제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기관의 경우 조례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지만 각기 지원 인력, 예산 등에서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이유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외에도 과거 소라넷 사건, 다크넷 웰컴투 비디오 사건 등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정부가 내놓은 관계부처 합동대책들이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여가부는 딥페이크 대책으로 디지털성범죄 특화 상담소 1개소 증설, 삭제 실무자 1인당 지원대상 확대, 딥페이크 탐지·삭제지원 시스템 자동·고도화, 디성센터피해상담 안내·신속지원 등을 발표하고 있다”며 “하지만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중요한 대응인 삭제지원과 유포방지를 강화하기 위한 디성센터 전문인력 증원, 예산증액, 국제공조 강화 등 실질적인 대책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현 성폭력방지법에 ‘디지털성범죄방지종합지원센터’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디성센터의 위상과 역할을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가부가 불법촬영물 삭제에 들어간 비용을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회수한 금액을 촬영물 삭제 지원에 쓰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이밖에 △국제 공조 강화 △주요 불법 해외 사이트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 △디지털 성범죄 통계구축 △디성센터의 예산과 인력 확충 등을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딥페이크성범죄물 사건에서 보듯이 디지털성범죄 피해유형과 양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타날 것”이라며 “이에 상응하는 피해 구제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조치는 피해영상물의 유포방지와 신속한 삭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보다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디지털성범죄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