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중동 톺아보기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 사망 이후 중동은
9월 27일 금요일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헤즈볼라 건물을 정밀 폭격했다.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폭탄 80톤으로 지하 20m 깊이의 지하벙커를 뚫어, 회의를 하러 모인 헤즈볼라 지도급 인사들의 목숨을 앗았다. 헤즈볼라는 이 공습으로 1992년부터 사무총장으로 헤즈볼라를 이끌어 온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스라엘 소식통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4년 동안 나스랄라의 은신처를 추적해 전임 지도자 압바스 알무사위와 마찬가지로 공습으로 살해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침공으로 시작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직후부터 나스랄라 암살을 계획했으나 미국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격적으로 나스랄라 제거 작전을 전개한 후 미국에 통보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미국이 손 쓸 틈 없이 거사를 치른 것이다.
이란이 가장 공들인 무장단체 헤즈볼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 침공 이래 하마스를 무력화하려면 하마스 헤즈볼라 등 중동지역 내 반이스라엘 비국가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이란의 영향력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드러났듯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비국가 무장단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의 하마스,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슬람지하드,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 예멘의 후시 반군 등 6개다. 이스라엘은 이들 조직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지목하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여긴다.
헤즈볼라는 비국가 무장단체 중 이란이 오랫동안 가장 공을 들여온 단체다. 헤즈볼라라는 말은 헤즈브(당)와 알라의 합성어로 ‘알라의 당’이라는 뜻인데, 코란 5장 56절 “알라의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1970년 요르단에서 축출당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레바논 남부에 기지를 구축했다. 당시 레바논은 1975년부터 그리스도교, 이슬람 순니파와 시아파, 드루즈교 등 다양한 종파가 권력을 다투며 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PLO가 내전에 개입하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 상태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의 PLO를 약화시켜 이스라엘 북쪽 국경을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국경에서 충돌이 격화된 데다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 암살 시도가 발생하자 ‘갈릴리 평화 작전’을 내걸며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 시아파 헤즈볼라다.
1985년 공식적으로 발족한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에서 팔레스타인해방 전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시작했고 1992년 나스랄라가 지도자가 된 이후로는 이란의 지원을 보다 조직적으로 받아 개별 전사 조직에서 제대로 된 군사조직을 만들었다.
이란이 보기에 헤즈볼라는 반이스라엘 항거를 이끄는 최전선의 정예부대로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다. 헤즈볼라의 존재는 2006년 7월 12일부터 8월 14일까지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벌인 전쟁에서 크게 부각했다. 압도적 전력을 가진 이스라엘은 군인 121명, 민간인 44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컸다. 헤즈볼라 거점 지역의 피해가 막심했지만 이스라엘 정규군이 비국가 무장 조직인 헤즈볼라에 크게 당했기에 이스라엘의 패배로 받아들여졌다. 이 전쟁을 두고 이란은 헤즈볼라도 못 이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란을 상대할 수 있냐며 자랑스러워했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국경은 레바논 남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헤즈볼라는 나스랄라의 지도력에 힘입어 군사력을 증강했다. 나스랄라의 말에 따르면 소속 대원이 10만명인데, 레바논 정규군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헤즈볼라는 무장조직을 넘어 레바논 내 정당으로도 활동중이다. 128명 의원으로 구성된 레바논 의회에 헤즈볼라는 ‘저항세력당(Loyalty to the Resistance Bloc)’이라는 이름으로 진출해 15명이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의회 다수 정치세력인 ‘3월 8일 연합’의 하나다. 의원수는 적어도 군사력이 막강하기에 “레바논이 곧 헤즈볼라”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닌 현실이다.
2006년 치욕에 와신상담한 이스라엘
아랍의 봄 이후 발생한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은 시리아정부를 수호하는 데 성공하며 이른바 시아초승달 세력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의 헤즈볼라 역할이 도드라졌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헤즈볼라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예전의 탄탄한 조직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듯하다.
이스라엘은 2006년 치욕을 갚고자 말 그대로 와신상담했고, 이러한 노력이 나스랄라 암살 전 헤즈볼라의 무선호출기 통신기 파괴 대란으로 현실화했다. 즉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무선전화 통신망을 뚫어 제2인자 푸아드 슈크르를 암살했고 이에 놀란 헤즈볼라가 통신망을 무선전화기에서 무선호출기로 바꾸자 폭약을 심은 무선호출기를 폭파시켜 약 3000명 이상의 헤즈볼라 대원이 죽거나 다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다.
비대해진 조직 내에 레바논 정정과 경제불안 장기화로 삶이 어려운 대원들이 늘어나면서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쉽게 헤즈볼라 내로 침투했고, 결국 나스랄라의 은신처가 드러나 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누구도 이스라엘 정보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반이스라엘 세력을 지원하는 이란을 겨냥했다. 이에 이란의 최고지도자도 모처로 피신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은 지금 ‘폭풍질주’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의 끈’ 놓지 않는 이란
이스라엘은 이란이 뒤에서 반이스라엘 세력을 조종하지 않고 링 위로 올라와 이스라엘과 한판 붙자고 계속 자극한다. 그러나 이란은 전략적 인내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방공망이 강력하지 못한 데다 공군력이 이스라엘과는 상대가 안되게 후진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맞부딪혀 이로울 일이 없다. 라이시 전 대통령이 노후한 헬기를 탔다가 사망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이란의 공군력은 1979년 혁명 이래 제재 때문에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싸움은 궁극적으로 미국과 싸움을 뜻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고 계속 경고해왔기 때문이다. 즉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쟁하겠다고 나오면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아니라 이란-미국 전쟁이 된다는 말이다.
미국 역시 중동 내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란이 움직이지 않는 한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확전의 열쇠는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 이란이 참아도 이스라엘은 계속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얼마만큼 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서방의 제재를 풀어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대선구호로 민심을 잡아 집권한 이란의 새로운 대통령 페제시키안은 어떻게 해서든지 참고 참아 미국 대선 후 미국과 대화로 제재를 해제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2018년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세 가지를 “이란, 이란, 이란”이라고 했다. 이란은 부정하지만 이란이 반드시 핵무기를 가지리라 믿는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을 끌어들여 이란의 핵시설을 없애려 한다. 이스라엘 생각에는 이란을 쓰러뜨려야 이란이 후원하는 반이스라엘 전선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란은 나스랄라의 죽음을 5일 동안 애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반이스라엘 전선에 앞장선다는 표현은 삼갔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반이스라엘 최전선이 헤즈볼라라고 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이라는 그림을 그려주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공세를 멈추지 않고, 이란은 이스라엘이 놓는 덫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모양새가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