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칼럼
‘애국시민’의 아이러니
가슴 뭉클한 ‘애국시민’이란 말이 아스팔트 도로에서 고생한다. 속절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 이후 ‘애국시민’을 소환하자 그예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초 관저에서 ‘실시간 유튜브를 통해 애쓰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시민을 넘어 여당 현역 국회의원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지난 주말에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한 집회에서 “애국시민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가짜 내란 몰이로 불법구금과 불법수사로 헌법과 법치가 무너졌다”고 억설(臆說)했다. 헌법과 법률을 심대하게 어겨 심판대에 오른, 정의롭지 못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이야말로 ‘애국시민’이라는 뜻이다.
탄핵 찬성과 파면을 외치면 ‘애국시민’이 아니다. ‘애국시민’이 아닌 것에 그치지 않고 대척점에 선 ‘반국가세력’이 된다. 윤석열이 지목한 바로 그 ‘반국가세력’이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나라를 어지럽혀 심판과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를 감싸고돌아야 ‘애국시민’이라니 무슨 역설인가.
‘애국시민’의 변질은 아스팔트 극우가 시위 때마다 하나같이 태극기를 들어 진짜 애국시민이 태극기 들기를 저어하게 된다는 양상과 흡사하다. ‘애국시민’은 계엄령과 윤석열 탄핵 국면에 들어 갑작스레 등장한 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아스팔트 극우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상징어가 됐다. ‘애국시민’의 꼭짓점에 있는 인물이 전광훈 목사다. 어느새 ‘애국시민’은 극우 유튜버들도 애용하는 낱말이 됐다.
윤 대통령 옹호가 '애국시민’이라는 역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과 광화문 여의도에 출몰하는 ‘애국시민’은 전광훈 세력, 극우로 불리는 강성 유튜버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윤석열이 이들을 ‘애국시민’으로 호명한 건 강성 지지층과 함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느덧 탄핵 찬성 집회를 능가하는 ‘애국시민’ 집회엔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든다. 전체 시민의 30% 안팎으로 추산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초기에 조롱 섞인 단어였던 ‘광화문 태극기’는 어느새 보수진영이 떠받드는 자유우파 애국세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한 연설자는 “애국시민 여러분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고 있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은 정당하다”고 외친다. ‘애국시민’ 무리는 ‘빨갱이 판사’를 찾겠다면서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난입해 폭력사태까지 일으켰다.
나라를 망쳐놓은 지도자를 ‘애국시민’이 구해내겠다니, 시민의 덕목인 애국이 선진 공화국에서 오염돼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것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가 계기가 돼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을.
‘애국시민’이라는 말은 공화정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처음 등장한다. 현대적인 의미로 발전한 것은 17~18세기 서구에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될 때다. 왕조 시대의 유산이 아니란 말이다.
한국에서도 ‘애국’이란 표현은 서양문물이 유입되고, 근대적 국가 개념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애국지사’로 지칭했다. 6·25 전쟁 이후 반공 이념과 더불어 애국심이 강조되고 ‘애국시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전두환정권 때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많아졌다. 2000년대 이후 보수 성향의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애국시민’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에서 애국이란 단어의 의미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손에 태극기만 들면 애국자인 줄 아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뜻이다.
애국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올바르게 행동하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유를 사랑하고 그것을 보장해 주는 법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처럼 법을 위반하는 지도자를 비호하는 게 애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애국심은 정의가 함께할 때 가장 고귀해"
국민의 4대 의무인 군 복무를 완수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고, 교육을 제대로 받고, 열심히 일하는 보통 시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시민이 아니던가. ‘애국시민’을 들먹이는 윤석열은 사실 부동시(不同視)를 이유로 헌법이 정한 의무인 군 복무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을 열렬히 감싸고 ‘애국시민’을 입에 달고 사는 전직 국무총리 역시 군 복무를 단 하루도 하지 않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애국심이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지, 특정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애국심은 정의가 함께할 때 가장 고귀해진다”고 했다. 한결같이 한국의 ‘애국시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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