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탄핵에 묻힌 외환범죄 진상

2025-03-18 13:00:00 게재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선고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국민들 ‘불면의 밤’은 무한정 길어진다. 법률을 대놓고 무시하는 내란동조세력의 책략에 힘입어 ‘내란수괴’ 혐의의 윤 대통령이 버젓이 풀려나는 일까지 벌어진 마당이니 불안감이 엄습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분열이 심화하고 선고 후의 후유증 우려도 커져만 간다. 헌재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며 시간을 끌지 말고 하루빨리 파면을 결단해야 한다.

온 국민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침탈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윤 대통령의 내란행위가 너무도 명명백백한지라 국회는 탄핵심판 청구 때 굳이 외환죄 혐의까지 얹어서 사안을 복잡하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내란심판에 관심이 쏠린 나머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반도에 분쟁을 불러올 뻔한 외환죄를 범한 윤 대통령의 죄과가 결코 없어지거나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양 상공 무인기 침투 누가 기획·지시하고 실행했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윤 대통령이 계엄사태를 일으키기 전 비상계엄 선포요건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그럴싸하게 조성하려 했던 의혹이 풀리지 않은 채 여전하다. 언제라도 툭 건드리면 반사작용처럼 즉각 대응해온 북한이란 ‘편리한 주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노골적인 작전이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전단을 살포하며 북한 지도부를 대놓고 자극한 것이다. 대북전단 대량살포, 9·19남북군사합의 파기, 대북확성기방송 재개 등 일련의 심리전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대적 군사훈련에 이어 위험천만한 도발을 감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행위다.

군사기밀이라며 일단 묻어놓은 상태지만 이토록 위태로운 작전을 기획하고 실제 행동에 옮긴 일을 언제까지 쉬쉬하며 감출 수는 없다. 누가 기획하고 지시를 내렸으며 구체적으로 실행한 기관은 어딘지 등등 대외적으로 공표는 않더라도 증거가 인멸되기 전에 내부적으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하지만 혐의자들이 서로 입을 맞추기 전에 수사가 진행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내란 중요임무종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장에도 이 부분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내란 ‘비선실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압수된 수첩에 적힌 숱한 범죄기획안 중에는 외환죄에 해당하는 대목들이 많다. ‘NLL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북에서 (수거 대상이 탄 배를) 나포 직전 격침시키는 방안'’, 또는 총 4가지 ‘수거대상 처리방안’으로 △GOP선상에서 피격, DMZ 공간 △바닷속 △연평도 등 무인도 △민통선 이북 등이 기재돼 있다. 비상계엄 선포 후에도 ‘전시·사변에 준하는 사태’를 조작해내기 위해 북파공작원(HID) 부대원들을 비밀리에 선발해 북한군으로 위장시켜 테러와 소요사태를 일으키려 한 내용도 있다. 청주공항·대구공항 습격, 정치인 등 암살 시나리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 살상무기 지원이나 파병을 검토한 것도 북한을 자극하려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틀어지고 적대국이 됐다. 이 와중에 벌인 김건희 여사 관련 삼부토건 주가조작이 새로운 의혹으로 불거지고 있다.

사실파악조차 못한 채 AI 등 첨단기술 협력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 지정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보듯이 전쟁이 터지면 모든 이성적 가치판단은 뒷전으로 밀린다. 한반도처럼 좁은 땅에서 북한핵무기를 포함한 온갖 첨단 군사장비가 밀집한 상태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일정한 선을 그어가며 무력충돌 확산을 제어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어느 한쪽이 내심 제한적인 국지전을 일으켜 소기의 정치적·군사적 성과를 올린 뒤 수습할 마음을 먹었다 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이를 알아채거나 수용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 전쟁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 몫이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윤석열정권 아래서 주변 강대국인 중국 혐오와 러시아 적대를 극대화하며 안보는 물론 경제적 손실을 자초한 것은 정책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겠지만 미국과 일본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편향외교는 안보를 튼튼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토록 미국에 매달렸음에도 지난 1월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로 지정됐다. 우리 정부는 사실파악조차도 즉시 하지 못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부하지만 어쨌건 윤석열정권의 책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3년 동안 도대체 망가뜨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