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미국 대학가의 반이스라엘 시위와 표현의 자유 논쟁

3월 13일 (현지시간) 뉴욕시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평화를 위한 유대인들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라는 유대인 반전단체가 주도한 이 시위 과정에서 약 100여명이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우리의 이름을 이용하지 마라 (Not in our name)” “학생이 아니라 나치와 싸워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흐무드 칼릴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마흐무드 칼릴은 지난해 12월 컬럼비아대학원을 졸업한 학생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작년 컬럼비아대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일 때 학교 측의 중징계에 맞서 협상하는 학생 대표단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3월 8일 저녁 컬럼비아대 캠퍼스 아파트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되었다. 임신 8개월인 아내와 함께 있던 그에게 사복 차림의 이민단속 요원들은 학생비자가 취소되었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그는 영주권자였다. 영주권자임을 확인하고도 그들은 마흐무드를 데려 갔다.
영장도 없이 체포된 것이 알려진 뒤 나온 트럼프정부의 해명에 따르면 칼릴은 반(反)유대주의, 테러리스트 동조자이고, 그의 행위가 미국 외교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고 판단해 영주권을 박탈하고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살고 있던 뉴욕시에서 1300마일이나 떨어진 루이지애나의 사설 이민구금소에 감금되어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트럼프는 대학가의 반유대주의가 심각하다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취임 첫날 행정명령에서 트럼프는 해외 유학생들이 반유대주의 시위에 가담할 경우 모두 추방하겠다고 했다. 이달 초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는 “불법 시위를 허용하는 학교, 대학에 모든 연방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했고, 그후 그 첫 본보기로 컬럼비아대학에 대해 4억달러(약 5800억원) 규모의 연방보조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대학 당국이 반유대주의를 방조해 유대인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칼릴이 이민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반전시위에 참가한 다른 학생들에 대해서도 이민 단속이 진행되고 있다.
13일 트럼프타워 시위에 참가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격을 비판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며 “유대인의 이름을 이용해 파시스트 어젠다를 수행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외쳤다. 트럼프가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 백인우월주의자, 나치 경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제재도 안하면서 유대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이스라엘의 가자 불법 공격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것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이 홀로코스트(나치 대학살) 희생자의 후손이라고 밝힌 한 시위 참가자는 자신의 조부도 마흐무드 칼릴처럼 한밤중에 납치되어 끌려갔다면서 다시는 같은 일이 그 누구에게도 반복되어서는 안되고, 더구나 유대인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칼릴을 ‘급진적인 외국인 친(親)하마스 학생’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체포가 “친테러, 반유대주의, 반미 활동에 가담한 이들 중 첫번째”라면서 “이제 시작일 뿐”이고 트러블 메이커와 선동가들을 모두 추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장 없는 불법 체포와 추방 시도는 미국 수정헌법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정헌법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 여부와 상관없이 부여된 헌법적 권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원칙을 여러차례 확인한 바 있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비드 콜 교수는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미국 시민과 비시민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발언만으로 시민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발언을 이유로 외국인을 추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추방 근거 이민법, 자의적 해석 악용 우려
트럼프정부는 이번 사건이 표현의 자유와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존재나 활동이 미국 외교 정책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국무장관이 판단할 경우 추방할 수 있다는 이민법 조항을 그 법적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거의 사용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단 하나의 사례는 1990년대 중반 클린턴정부가 이용해 돈세탁 혐의를 받은 후 미국에 임시 비자로 입국한 멕시코 고위관리를 정식 절차 없이 추방하려고 했던 경우인데 당시 연방법원은 이 법조항이 모호하고, 비시민권자가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위헌판결을 내린 연방판사는 트럼프 대통령 큰누나인 매리엔 트럼프 배리였다. 이후 상급 법원에 의해 다른 이유로 판결이 번복되었지만 “잠재적으로 심각하게 불리한 외교정책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 법조항의 표현이 모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 ‘헌법권리센터’의 브래드 파커 변호사는 “이것은 미국 이민법의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조항을 이용해 마흐무드를 추방하려는 시도임이 분명하고, 이 조항을 통제하지 않으면 정부의 외교정책 의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는 데 악용될 것”이라면서 “이것은 안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절대권력과 억압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칼릴의 변호인단은 그가 작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벌어진 반전운동 과정에서 학생 측 대표로 종종 언론 인터뷰에 응했고 다른 학생들과 달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나와 정부의 쉬운 타깃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불법 체포는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은 트럼프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어떻게 탄압할 것인지 그 서막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와 반대자들을 제압하려는 이른바 트럼프판 ‘입틀막’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3월 4일 상하원 의회 연설에서 자신이 “모든 정부 검열을 중단하고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되찾았다”고 자화자찬 했지만 수정헌법 1조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가 공격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범죄 기록이 없는 영주권자인 칼릴에 대한 추방 위협은 시위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에게 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경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대 로스쿨 소냐 웨스트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정부가 개인의 정치적 발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합법 신분을 가진 영주권자를 그냥 ‘사라지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앞으로 더많은 사람들에게 벌어질 일의 시작일 뿐이라고 위협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냉각 효과의 위험은 분명하다”고 경고한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의 서막
칼릴의 체포 소식은 미 전역 대학에 ‘위축 효과 ’를 불러오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학생들로부터 소셜미디어 포스팅부터 해외 여행, 학내 활동과 집회 참여 등 당연히 여겨졌던 권리 행사에 대해 문의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보복을 우려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것을 요구한 UC버클리대의 한 학생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모든 학생들 특히 유학생들, 비자와 영주권을 소지한 유학생들에게 무서운 선례를 남겼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도 경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반전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된다면 미국 전체와 수정헌법1조에 대한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고, 다음 표적이 누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