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파이, 무한한 가능성의 융합 역량 레시피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교육자들이 최근 자주 듣는 질문이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각자 고유한 파이를 그려라. 자,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파이는 무엇인가? 원 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학 기호 파이(π) 인가, 아니면 달콤하거나 짭짜름한 밀가루 요리 파이(pie) 인가? 혹은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태평양을 건넌 인도의 소년, 파이(Pi Patel)가 떠올랐는가?
우선 수학 기호 파이(π)에 집중해보자. 14일은 원주율라고도 불리는 파이의 의미를 되새기는 ‘파이 데이(Pi Day)’였다. 3.141592…로 무한히 이어지는 파이의 첫 숫자 3.14를 따서 매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파이의 효용이나 수학적 의미는 논외로 하자. 이 기호는 위에서 아래로 뻗은 두 개의 세로획과 이를 연결하는 가로 획으로 구성된다. 이 단순한 구조를 기억해 우리가 공부하고 탐구해야 할 방향을 정해보자.
두개의 세로 획은 끝없이 파고드는 영역이다. 한 획은 먹고 사는 일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넘쳐난다고 겁먹지 말자. 공부를 막 시작한 학부생이라도 자신이 교수가 될 것처럼 공부하자. 아르바이트 직원이라도 자신이 사장님인 것처럼 경영 전략을 역설계해 보자. 전문가가 되어보려는 태도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우리 두뇌가 정보를 조직하는 방식을 바꾼다. 복잡한 개념을 의미 단위로 묶고 위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차원적 추론이 활성화되며 신경 가소성이 촉진된다.
파이의 가로획과 세로획의 의미
더 중요한 두번째 세로 획은 호기심으로 긋는다. 억만금을 벌겠다거나 세상에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세우진 말자. 그저 자신이 궁금하고 재미있으면 충분하다. 주변에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왜 하느냐”라는 핀잔을 한다면 바로 그곳이 호기심의 세로 획이다. 다만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호기심이란 인지적 결핍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궁금해서 알고 싶다’는 갈증은 ‘배고파서 먹고 싶다’와 같이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고, 우리 뇌의 내재적 보상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호기심을 해결할 기대만으로도 이 시스템은 작동하며 해결되는 순간에도 역시 작동한다. 이 때 느끼는 즐거움은 배움 자체를 가치롭게 여기는 ‘내적 보상’이며 평생 공부를 가능케 하는 큰 동력이다.
뿐만 아니라 호기심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는 선물은 끈기, 몰입, 문제 해결력, 깊이 있는 정보처리 능력, 재미없이 시작하더라도 학습과정에서 재미가 커질 수 있다는 믿음, 낯선 분야에 긍정적으로 접근해 잠재적 흥미를 발견하려는 태도 등이다. 이것은 또 다른 세로 획을 그을 때 적용되는 자신의 보편적 역량이 된다.
먹고 삶과 호기심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영역이라고 해도 깊이 파고들다 보면 만날 수 있다. 바로 창의력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세로 획이 서로 만나게 돕는 것은 바로 파이의 가로 획이다. 자신과 관계없어 보이는 영역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아이디어에 두루두루 마음과 귀를 열면 옆으로 더 옆으로 뻗어가는 획이다. 숨막히게 바쁜 세상이지만 먹고 사는 일 외엔 지레 문을 닫아버리는 실수를 하지 말자. 쓸모없거나 낯선 활동을 하는 것은 안으로는 인지적 유연성을, 밖으로는 다양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힘을 길러준다. 중요한 학습 전략이다.
호기심의 세로 획과 낯선 영역에 열린 가로 획은 때때로 ‘쓸모없음’으로 보일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공부는 오히려 ‘쓸모없음’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완전히 쓸모없는 일에 몰두했던 클로드 섀넌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비트(bit)’의 세상에서 데이터를 압축하고 암호화하며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그리고 인공지능 서비스를 누리게 되었다.
한편 처음엔 컴퓨터가 쓸모없는 물건이라 여겼던 케빈 켈리는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져올 혁신을 깨닫고 과학문화기술 매거진 와이어드(Wired)를 창립했다. 그는 심지어 ‘매일같이’ 쓸모없는 일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파이를 그리고 있나
무쓸모는 끝없이 순환하는 무한소수 파이(π)처럼 멈추지 않는 우리의 배움과 탐구 과정의 동력이다. 가로 세로 획으로 파이(π)를 구조화해 가다 보면 자기만의 재료로 구워 세상에 하나뿐인 파이(pie)가 완성된다. 이 파이는 다시 다른 이에게로 가 파이(π)의 가로획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반복되고 각자의 파이는 확장된다.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시대, 우리는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는 작은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살아남아야 했던 파이(Pi Patel)를 닮았다. 당신은 지금, 어떤 파이를 그리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