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돌보는 전문 유치원 열었다
영등포구, 성애병원 손잡고 주간돌봄시설 개소
공간치유 적용 건축설계 … 의료진 재활지원
"아이고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하고 이름이 같아요." "내 신발이 없네. 어디다 뒀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에 위치한 영등포 구립 치매 전문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기억을 잃은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아들 이름을 찾아내고 신발을 품에 안고도 신발을 찾는다. 한시간에 서너번은 화장실에 다녀야 하고 쉽게 싫증을 낸다. 하지만 노래 반주가 시작되면 환한 얼굴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요양보호사 도움을 받아 그림도 곧잘 그린다.
영등포구가 치매노인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호하면서 기억 회복을 돕는 전문 유치원 즉 주간보호시설을 개소해 주목을 끈다. 치매가 없는 일반 노인과 함께 보호하거나 등급을 받지 않은 노인을 위한 시설은 있지만 치매노인만을 위한 주간돌봄시설은 지자체에서 처음 하는 시도다.
구에서 전문가들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치매노인 돌봄시설을 구상한 이유는 지난해 7월 노인장기요양 등급에 '치매특별등급'이 신설되면서다. 증상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치매환자들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늘고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해야겠다 싶었다"며 "치매예방 업무를 하는 치매지원센터와 같은 건물에 공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가 발생할 확률은 9.18%. 영등포구 65세 이상 인구 5만87명과 견주어보면 약 4500여명 치매환자가 예상된다는 계산이다.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예방 등록관리사업을 하고 있는데 2009년 이후 '고위험군' 7480명을 찾아냈다.
치매지원센터 건물 5층에 주간보호시설을 마련하면 업무연계까지 가능하다고 판단, 준비를 시작했다. 건축설계부터 치매환자를 고려했다. 시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치유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공간을 통한 치유(아키테라피) 개념을 적용, 미국 특허청 인증을 받은 업체에 설계와 시공을 맡겼다. 전통 대청마루를 활용한 공간, 격자무늬 창과 내부 벽돌자재는 치매환자들이 자연스레 기억을 회상하도록 돕는 장치. 시설 전체로 쏟아지는 자연 채광이나 울퉁불퉁한 벽면은 촉각 시각 청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다감각 자극장치다. 의사 도움으로 6가지 운동치료를 할 수 있는 종합운동기, 건강상태 점검 등에 필요한 의료용 침상 등도 구비했다. 보호자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조정숙 데이케어센터 팀장은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인지·운동치료와 함께 성애병원 의사가 주기적으로 검진을 하고 있다"며 "5등급 환자는 제대로 돌보면 증세 호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혜옥 성애병원 윤혜복지재단 이사장이 뜻을 같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영등포에서만 50년간 병원을 해왔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며 "환자들 관심이 큰 식사는 전문가가 있지만 직접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센터장을 맡고 있지만 자신의 급여는 요양보호사 추가 채용이나 운동지도를 위한 성애병원 의료진 초빙에 투입한다.
영등포구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지 두달 남짓.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지만 이용자들 만족도는 높다. 72세 어머니를 위해 멀리 송파에서 주간보호시설 근처로 이사까지 감행한 이 모(45)씨도 그 중 하나다. 이사를 마칠 때까지 16일 동안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머니와 함께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그는 "증상이 악화되는 걸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좀 더 좋고 전문적인 시설을 찾았다"며 "증세가 급격히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만족해하고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상태를 좀더 지켜보다가 중단했던 일을 다시 시작할 계획도 있다.
영등포구 '치매 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는 주민은 최대 44명. 건강보험에서 이용료 85%를 지원하고 본인부담은 15%, 월 15만원 가량이다.
조길형 구청장은 "한 건물에서 치매 예방과 검진 돌봄서비스가 가능해져 환자와 가족은 편해졌고 업무 효율성도 커졌다"며 "영등포에서 먼저 시작한 사업이지만 복지부에서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