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예술-빈곤'에서 벗어난 새로운 프레임을

2015-09-03 10:48:21 게재

얼마 전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연구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아 120분 가량 인터뷰이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경력은 얼마나 됐으며 직업은 무엇인지 같은 일반적인 문항들 속에 '왜 예술인들은 생활이 안 되는데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 건가'란 질문이 삐죽 튀어나와 내 귀를 찔렀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고 작업을 안 하면 사는 것 같지가 않다며 몇 번을 웃어넘겼는데도 인터뷰어는 마치 도돌이표가 붙은 악보를 연주하는 것처럼 내가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나면 다시 그 질문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결국 피할 수 없겠다 싶어 나는 예술인 각자에게 각기 다른 계기들이 있는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예술-빈곤은 태초부터 하나인가

그 날의 인터뷰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도대체 그게 뭔지 꼬집어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이 찜찜한 상태로 일주일을 넘긴 후에야 '왜 예술인들은 생활이 안 되는데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 건가'란 질문의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질문은 '예술인은 특이하기 때문에 생활이 안 되는데도 예술을 직업으로 삼으며 따라서 예술인의 빈곤은 개인이 선택한 결과다'라는 결론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질문의 프레임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998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엿보인다. 2012년 결과를 보면 문화예술인의 66.5%가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 100만 원 이하로 4인 가족 기준 당시 최저생계비인 154만6000원에도 못 미친다. 조사결과에는 이 외에도 예술인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드러내는 지표들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빈곤의 원인은 나와 있지 않다. 이유도 원인도 설명되지 않은 채 예술-빈곤은 샴쌍둥이처럼 그저 태초부터 하나였다.

다시 그 날의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인터뷰가 끝날 때쯤 연구자가 녹취를 담당하던 대학원생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를 줬다. 윤기 흐르는 까만 단발 아래로 날렵한 턱선이 돋보이던 대학원생은 턱선 만큼이나 날렵한 눈으로 노트북 모니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혹시 작가님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괜찮으시다면요.

딱히 괜찮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했다. 두 명의 인터뷰어는 자신들은 모르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알바를 여러 탕 뛰며 남는 시간에 작품을 끼적거리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눈을 반짝였다.

내 대답을 두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화가 농밀해질수록 오히려 내가 두 사람을 특별하게 느끼게 됐다는 사실이다.

나는 두 명의 인터뷰어가 어떻게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고 왜 하고많은 연구 중에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묻지 못 했다.

왜 예술인은 일을 하는데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가

한 인간이 나고 자라서 직업인이 되기까지, 그 속에는 타인은 알지 못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개인의 역사 속에서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특별하며, 예술인의 특별함도 딱 그만큼이라 생각한다. 예술인이 특이해서 스스로 빈곤을 선택했을 거라는 추측은 일종의 신화다.

문체부는 올해 그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조사 대상과 조사 방법의 문제를 보완해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술인에게 던지는 질문의 프레임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빈곤의 테두리를 벗어난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늘상 하고 들었던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왜 예술인들은 생활이 안 되는데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 건가'가 아니라 '왜 예술인들은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데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가'로.

예술인의 삶을 빈곤으로 이끄는 다양한 외적 문제

전자에 대한 답은 예술인 개인의 계기와 선택에 매몰되지만, 후자에 대한 답은 왜곡된 문화예술산업시스템, 예술인이 소외된 유통구조, 잘못된 예술노동환경, 보편복지로부터의 배제, 예술창작물을 공공재로 보는 대중의 시각 등 예술인의 삶을 빈곤으로 이끄는 다양한 외부적 문제들로 확장된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는 말 그대로 문화예술인, 즉 사람에 대한 표본 조사다. 이제 문체부는 질문의 프레임을 바꿔 예술인뿐만 아니라 예술인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에 대한 전국적 규모의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어떤 인간도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을 스스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장지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 작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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