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에게 '복지'를│③ 현장 예술인들의 바람

"예술인 복지는 예술활동 위한 기본 토대"

2015-09-09 10:15:03 게재

문화산업과 기초예술 지원 달라야 … 시나리오작가, 연극배우 등 다양한 노조 필요

내일신문은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 복지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짚고 발전 방향을 논했다.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 보장' 혜택을 풍부하게 마련하고 각종 지원사업들이 예술인들의 삶에 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일신문은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며 현장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복지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대학로 맥도널드에서 돌아가며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연극인들의 생활고에서부터 '예술인'으로 호명됨으로써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싶다는 청년예술가의 바람까지 들어볼 수 있다. 이들이 원하는 복지는 비단 예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일 문화연대에서 열린 '예술인에게 복지를 - 현장 예술인들의 바람' 좌담회에는 하장호 예술인소셜유니온 사무처장의 사회로 장지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 연극인 이종승씨, 사회예술가 홍승희씨가 함께 했다. (이하 직함 생략)

4일 문화연대에서 현장 예술인들의 예술인 복지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예술인에게 복지를 - 현장 예술인들의 바람 좌담회가 열렸다.


하장호: 지난 6월, 예술인 2명이 생활고로 세상을 등지면서 예술인 복지에 대해 한창 논의가 이뤄졌다. 장 위원이 예술인 복지를 주제로 한 좌담회·토론회·포럼 등에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참여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장지연: 많은 토론회나 좌담회에 참여하면서 각 논의들이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펼쳐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엔 이에 대한 담론을 어디서 어떻게 결집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또 예술인 복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빈곤' 프레임 안에 두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공무원이 했다는 말이 "예술인들이 가난하면 돈을 벌어야지, 벌지는 않고 달라고만 하냐"는 것이었다.

예술인들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 복지가 논의되기 때문에 이 프레임이 계속되는 것인데 이 프레임 밖으로 나오기 위한 논의가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 이 프레임을 보다 확장해야 예술인 복지를 위한 재원 마련도 가능해질 수 있다.

하장호 예술인소셜유니온 사무처장 △전 희망의 노 래 꽃다지 기획실장 △전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 동가

하장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인들이 가난하니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예술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예술인처럼 청년들도 빈곤 프레임에 갇혀 있는데 청년들이 가난하니까 도와줘야 한다기보다는 '생애주기에 맞춰 사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청년예술인들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을 법하다.

예술활동만 해선 먹고 살 수 없다

홍승희: 지난 7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청년예술포럼을 개최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예술 활동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한 달에 몇 차례 일이 들어오면 하는 식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력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예술인 활동증명'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대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년예술인들이 연결돼 있지 않고 각자 외롭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종승: 연대감에 대해 얘기하자면, 연극인들의 경우 비교적 연대가 잘 돼 있는 편이다.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가 있고 지부지회가 있는 등 협회나 단체가 많다.

그런데 정작 회원들의 복지나 권리 등과는 밀접하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정작 연극인 당사자들은 예술인 복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달에 성북연극제에서 4회차에 걸쳐 연극인들이 모여 포럼을 할 예정이다. "너 요즘 어떻게 생활하니?" "선배님, 어떻게 버텨 왔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뭘 하고 싶은데 공간이 없어서 고생을 한다고 하면 어디에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홍승희 사회예술가 △민족민술인협회 △신촌대학교 소셜아트학과장 △시민의식으로 그리는 사회예술프로 젝트(2015)

홍승희: 이런 연대감은 예술인들끼리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시민들과도 필요하다. 외국에서 예술인 복지제도가 잘 정착된 나라들의 경우 시민들이 이 의제를 힘 있게 지지해 줬기 때문에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예술은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를 넘어 예술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사회적 역할을 할 때 지지받을 수 있다. 때문에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이다.

하장호: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 제도가 좋다고 하는데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예술인들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등 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공헌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지원에 대한 합의가 만들어졌다.

예술인 경력 관리하는 시스템 있어야

하장호: 예술인 활동증명에 대해 얘기해 보자. 예술인들이 원하는 대로 기준이 만들어졌다고 보나.

장지연: 예술인 활동증명을 통해 예술인들이 얻는 것은 '예술인 패스' 하나다. 연극인이 국립극장 등에서 연극을 볼 때 할인을 해 주는 것처럼 예술인이 공연, 전시 등을 볼 때 할인을 해 주는 것. 이 외의 혜택은 없다. 다만 예술인 활동증명이 돼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지원사업들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예술인 활동증명이 중요한 것이다.

개인적으론 개별 지원사업마다 기준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굳이 예술인 활동증명 기준을 높게 잡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특히 청년예술인들의 경우 별도의 예술인 활동증명 기준이 필요하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가 있다. 사회에서 '너는 예술인'이라고 호명을 해 줄 때, 그 호명은 청년예술인 개인에게 굉장히 힘이 될 수 있다.

홍승희: 예술인복지재단에 전화를 하면 연결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청년예술인들끼리 경력이 별로 없으니까 예술인 활동증명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던 중 30대 후반의 한 예술인이 "30대 후반이 되면 돼"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렇게 나이가 들어선 예술인 활동증명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장기적으론 예술인들의 경력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저장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장지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작가 프로듀서 △연극 낙서하는 남자(1999) 작/연출, 늙은 코미디언 의 창고(2012) 작/연출,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 다를 떠돌았다(2013) 작/연출 △영화 서울시민영화제 프로그래머 △(주)투픽 기획 프로듀서

장지연: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인들의 경우 문화예술 행정 시스템에서 예술 활동 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사업,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등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들은 인건비가 지급되기 때문에 목록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목록들을 통합하면 예술인들의 목록이 될 수 있다.

하장호: 이렇게 되면 실제로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인력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닌 만큼 문체부가 나서서 이런 작업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종승: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 지원사업도 개선됐으면 좋겠다. 매우 선별적 지원이기 때문에 문제다. 다 함께 신청을 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정부 지원을 해 주는 것처럼 예술인들에게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 현행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의 경우 3달 동안 지원해 주는 것인데 사실 선정이 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뭔가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장지연: 예술인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산업이 이 문제를 풀어간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5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영화를 찍을 때 스태프들의 4대 보험을 다 들어주려면 2억원 정도 더 든다. 이 2억원은 지난한 논의와 투쟁 끝에 대기업 투자사가 제작 예산에 편성해서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정착이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 지원금으로 만들어진 기초예술 작품의 경우 정부가 4대 보험까지 지원을 해야 한다.

선배예술인이 청년 위한 '판' 만들어야

장지연: 각 문화예술 분야도 스스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참여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선 제작을 해선 안 된다고 본다.

특히 젊은 예술인들이 덜 좌절하면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선배 예술인들이 노력을 해 줘야 한다. 1999년 변방연극제가 생겼을 때 당시 선배 연출가들이 "꼭 조연출을 원로 밑에서 20년이나 해야 연출가가 될 수 있냐"면서 젊은 연출가들을 위한 연극제를 만들자고 했다.

이런 식으로 선배 예술인들이 새로운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청년예술인들은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 다 힘들 텐데 '너희끼리 해 봐'라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종승 연극배우 △성북연극협회 이사 △세월호 연 장전 기획단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시설운영팀장 △성북페스티벌 기획팀장

이종승: 일부 극단의 경우 극단 단원들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공연을 할 때는 외부 인력을 계약해 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단원들은 단역밖에 못 하기도 한다.

강서구 등 몇몇 구에서 구립극단을 만드는 사례가 있어 의미 있게 보고 있다. 2년을 주기로 배우들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에 봉사할 수 있다. 주민들 입장에선 양질의 공연을 대학로까지 멀리 가지 않고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기본적인 토대의 변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지연: 각종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인건비'를 책정할 수 있어야 한다. 3년 전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에서 실험극을 하기 위해 지원을 받았는데 예산 항목에 인건비를 넣지 못하게 돼 있었고 그것이 관행이라고 들었다.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축제의 경우는 지원사업에 인건비 책정이 가능하다.

이종승: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문체부에서 '공연티켓 1+1'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대기업들이 상당수 혜택을 보고 있다. 연극과 같은 기초예술은 혜택을 보기 어렵다.

장지연: 문화산업과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 방식이 달라야 한다. '공연티켓 1+1' 사업의 경우 피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하는 것인 만큼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은 다른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기초예술은 상설공연을 할 수가 없다. 실험극의 경우 일주일 동안 공연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마다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입증할 수가 없다. 때문에 기초예술에 상응하는 별도로 설계된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이종승: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이 빚을 지는 가장 큰 이유가 극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대관료이기 때문이다. 예술위에서 극장을 저렴하게 지원해 주면 '어린이청소년전용극장'을 만드는 등 극장을 특성화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지원해 주면 단순히 돈을 지원해 주는 것보다 더욱 도움이 된다.

'연극인 유니온' 조직, 목소리 내겠다

하장호: 예술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배타적으로 예술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조직을 만들고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이종승씨는 연극인 유니온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종승: 관심 있는 배우들 몇 명이서 조합이 무엇인지, '예술 활동은 노동'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공부하고 있다. 10월 이후부터 보다 많은 연극인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대부분 연극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고 맥도널드 아르바이트를 하고 무대 설비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감수할 일들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연극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만 생각하지 예술인 복지 등의 개념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예술인들 스스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홍승희: 청년예술포럼에선 청년예술인들의 목소리가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내년에 총선이 있는 만큼 청년예술인들이 의제를 잘 설정해서 총선에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또 '생활적 연결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거나 작업공간을 공유하고 나아가 청년예술인들의 자립적인 수익구조가 창출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청년예술인들의 경우 이런저런 관련한 논의를 풀어가려 해도 오프라인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라도 청년예술인들끼리 만나려는 노력을 하는 게 시급하다.

장지연: 이런 노력들을 통해 시나리오작가,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집단의 노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3일 동안 공연을 해도 2~3개월 동안 연습을 하는데 이 기간도 노동 시간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정부로부터이든, 제작사로부터든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급선무다.

이종승: 예술이 꼭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예술인들이 기본적인 사회 보장은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민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하장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술인 복지를 예술인만을 위한 복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예술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에 대한 것이다.

때문에 보편적 복지라는 커다란 그물망 안에서 보조적으로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가 설계되는 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인 복지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술인들이 살아가면서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장지연: 예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과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들의 삶이 불안한 만큼 우리의 삶도 불안하다, 그러니 함께 해결해 보자는 논리가 필요하다.

홍승희: 예술인들은 작업의 특성상 '나와의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더욱 각자 골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의 아픔이 나만의 아픔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아픔이라는 것을 청년예술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요구 사항은 계속 작업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뿐이다.

예술인이 특별하기 때문에 지원해 줘야 한다, 혹은 어렵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 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예술 활동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예술인에게 '복지'를 연재기사]
-[예술인에게 '복지'를│① 예술인 복지법] 예술인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2015-09-02
-[예술인에게 '복지'를 │② 예술인 복지 지원사업] 창작준비금 지원사업 성격 모호 2015-09-03
-[예술인에게 '복지'를│③ 현장 예술인들의 바람] "예술인 복지는 예술활동 위한 기본 토대" 2015-09-09

정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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