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에게 '복지'를│① 예술인 복지법

예술인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2015-09-02 10:20:34 게재

지위와 권리 조항에 비해 미약해 … 해외에선 특별제도 마련하거나 근로자와 동일 보장

지난 6월, 연극계와 영화계에서 활동해 오던 2명의 예술인이 '생활고'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인 복지법이 2011년 11월 제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예술인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내일신문은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복지 사업의 현재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예술인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발전 방향은 무엇인지 짚고자 한다.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6개밖에 안 되는 '3050국가'이며 무역으로 따져도 세계 10위권에 이른다. 3050국가란 인구 5000만명에 소득이 3만달러 가까이 되는 나라를 뜻한다. 그러나 예술인들에 대한 처우는 바닥권이다.

지난 6월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배우 고 김운하씨의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서울연극협회 제공


특히 예술인 복지법이 2011년 11월 제정됐음에도 예술인들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화융성'을 강조하는 박근혜정부에서도 문화를 창작하는 예술인들은 생활고로 고통 받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실효성 없는 예술인 복지법'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예술인 복지법에 예술인의 사회보장 조항이 미약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예술인 복지법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예술인 복지법엔 '산재보험'만 = 예술인 복지법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예술인의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에는 4대 보험 즉,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돼 있으나 단기 계약직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대다수의 예술인들은 사회보장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인 복지법에 명시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조항에 비해 사회보장 조항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술인 복지법 제3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는 '모든 예술인은 자유롭게 예술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예술 활동의 성과를 통하여 정당한 정신적, 물질적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등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조항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같은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은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장이 유일하다. 각 조항들은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 및 보상 등에 관하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예술인이 납부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향상된 만큼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 체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강조하는 박근혜정부에서 예술인들이 아직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전세계에서 경제 순위로 10위권에 이르는데도 예술인들의 삶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실업급여 지원하는 프랑스 = 예술인에게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특별 사회보장제도 등을 마련한 해외의 예술인 복지제도와 비교하면 국내 예술인 복지법의 사회보장 수준이 낮다는 것은 보다 분명해진다.

프랑스의 경우 '엥떼르미땅(Intermittent)' 제도를 운영, 예술인들의 고용 형태의 특수성을 고려,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영화, 연극 등의 제작에 참여한 배우나 스태프들은 작품 활동이 끝난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이 제도를 활용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예술인 복지제도인 특별 사회보장제도는 저작권을 갖고 있는 전업예술인에게 건강보험과 노령연금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81년 '예술가사회보험법'을 제정하고 1983년 '예술가 사회금고'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가 복지제도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예술인들은 연금보험, 의료보험,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예술인들을 위한 별도의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지만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을 동일하게 받고 있다.

각 나라들은 예술인들을 위한 별도의 복지 제도를 마련하거나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복지 제도를 적용하는 식으로 복지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인 복지법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사회보장만 명시돼 있다.


발의안보다 후퇴한 현행법 =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예술인 복지법 제·개정안의 경우, 해외에서 보장하고 있는 수준의 복지 혜택을 예술인들에게 상당 부분 보장했으나 법안 제·개정 과정에서 후퇴했다. 주로 고용보험 등 기존 4대 보험을 예술인들에게도 적용하고자 한 시도들이다.

2011년 4월 당시 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예술인의 지위와 복지에 관한 법률안'에는 고용보험, 건강보험 가입 특례 등의 조항이 있었으나 삭제됐고 산재보험 가입 특례는 축소됐다. 특히 '예술인은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에 있어 근로자로 본다'고 명시돼 있었으나 삭제됐다.

이처럼 예술인 복지법이 제·개정 과정에서 후퇴하는 것은 현행법과의 충돌 등을 고려한 논리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법 제정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타 업종의 자영업자 및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형태종사자 등 다른 취약계층 종사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노동관계법을 통한 보호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기존 사회보험 외 특화된 별도의 맞춤형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예술인 맞춤형 제도를 위한 근거 조항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실질적인 지원 고민해야 =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현행법과의 충돌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예술인 복지에 대해 예술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관점이 아니라 예술인들이 하는 작업을 '노동'으로 바라보고 넓은 의미에서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출범 이전 자문을 했던 한 예술인은 "요즘 예술계에서는 '예술노동'이 화두"라면서 "예술인들의 예술 작업과 활동들이 '노동'이라는 것이 공유돼야 예술인 복지법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장호 예술인소셜유니온 사무처장은 "만약 현행법이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이를 담아낼 수 있도록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면서 "예술인들을 기본적인 사회보장 체계 안에 편입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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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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