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외교의 길
복잡한 대북관계 풀 '실용외교'
미국은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매우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주미 대사를 지낸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최근 저서 '외교의 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한테 불리하지 않다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만약 보수적인 인물이 대통령직에 있었다면 국내적으로 파병 반대나 비판이 훨씬 더 강력하고 격렬했을 것이다. 파병에 가장 강하게 반대할 사람들이 대통령 지지세력이다"는 논리다. 한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이 언사는 그렇게 (미국에 거리를 두는 식으로) 하면서도 행동이나 조치에는 미국에 꽤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한 전 장관은 스스로를 "햇볕정책에서 유화정책으로 연결하는 것", "햇볕정책 신봉자에서 조금 더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쪽으로 바꾸는 것"을 당시 자신의 임무로 소개하기도 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와 관련해 그는 '외교'라는 프리즘으로 본 다섯 가지 위기와 도전을 설명했다. △북한의 핵무장 △미국의 자기중심주의 △중국의 대국주의 △미국-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 △리더십과 전략, 국민적 합의가 없는 우리나라 상황을 짚어냈다.
그는 "오랜 기간 북핵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왔는데도 진전이 없다보니 피로감이 생기고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 있다"면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고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외교의 가장 큰 위기는 정치의 불안정"이라며 "정치와 제도,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는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꼭 필요한 것으로 "안정적이고 감정과 이념,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을 꼽았다.
실용외교가 뭘까. 그는 실용주의를 "이론이나 사상보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을 강조하는 태도"로 규정하고 "북핵문제는 반드시 대화에 따른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믿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무릅써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일부 보좌진과 다른 입장을 갖는 경우가 가끔 있었으나 결국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건의를 받아들임으로 현실 외교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이라크 파명, 한미 FTA 비준,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들었다.
한편 그는 "노 대통령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나에게 주미대사 자리를 제의했고 나는 그것을 수락했다"면서 "나는 노 대통령에게 좌우를 아우르는 큰 텐트를 칠 것을 건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