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치구 '치매 국가책임제' 이끈다
서초구 안전·건강 담은 주택실내장식 선봬
영등포 '낮돌봄시설' 동작 '기억정원' 인기
현관 앞 깔판을 밟으면 집안에 작은 경고음이 울리고 식탁에는 '약먹는 달력'이 비치돼있고 거실과 방 사이 문턱이 없는 집, 자연 채광과 울퉁불퉁한 벽으로 오감을 자극하고 의사가 상주하며 운동과 건강상태 점검을 돕는 돌봄시설…. 정부가 치매극복의 날(21일)에 맞춰 대통령 공약인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서울 자치구가 치매 예방과 경증 환자 돌봄을 위한 앞선 정책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며 치매 진전을 늦추는 동시에 가족들이 겪는 부담을 줄이는 형태다.
서초구는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집안을 장식한 '안심하우스'를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선보였다. 염곡동에 있는 노인복합문화시설 '내곡느티나무쉼터'에 24평 가량(81.55㎡) 주택을 그대로 옮겼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정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주민들 어려움을 돕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조성하자는 주민 제안이 서울시 참여예산 사업을 채택됐다.
안심하우스는 환자의 상태와 동선을 최대한 고려해 꾸몄다. 바닥과 벽, 문과 손잡이, 벽지와 콘센트 등은 구분이 쉽게 다른 색깔을 사용했고 방문이나 수납장 냉장고 등에는 그림과 글씨를 붙여 안쪽을 가늠하도록 했다. 현관과 소파 옆, 변기 앞에는 일어날 때 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가 설치돼있고 목욕탕에서는 미끄럼 방지 타일과 샤워 의자, 냉·온 표시가 된 수도꼭지가 눈에 띈다. 그릇이 밀리지 않도록 매트를 깐 식탁과 손힘이 약해진 노인 맞춤형으로 구비한 수저, 한달치 약을 나눠 보관하는 '약먹는 달력'과 투약시간을 알리는 알람시계, 환자 먹거리를 따로 보관하는 작은 냉장고 등 활용할 만한 소품이 다양하다.
서초구는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안심하우스를 일반에 개방, 환자와 가족들이 둘러보고 집안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도움을 얻도록 했다. 관련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 해설사가 각 시설과 소품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안심하우스 안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음성증폭기나 돋보기 손톱깎이 등 치매환자용 물품을 전시한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기억키움센터 치매예방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박미자(71·잠원동)·차매화(78·반포1동)씨는 "지금은 건강한데 혹시나 필요한 상황이 되면 집을 이렇게 꾸미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치매 환자와 가족들 부담을 줄이고 건강한 노후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100세시대 효도하는 마음을 담아 복지 체감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영등포구에는 낮시간대 치매노인을 맡길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이 있다. 당산동3가 치매지원센터 5층에 마련한 데이케어센터는 가정에서 돌보는 치매환자만을 위한 전용시설이다. 공간을 통한 치유(아키테라피) 개념을 적용해 미국 특허청에서 인증받은 업체가 기억인지와 다감각 자극 장치로 설계했고 물리치료나 재활치료 공간, 보호자를 위한 쉼터도 배치했다. 위탁운영을 하는 병원측에서 의사들이 찾아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건강강좌도 진행한다.
동작구가 지난해 9월 문을 연 '기억의 정원'도 하루 평균 30여명, 연간 1만여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흡연과 쓰레기 무단투기로 골치를 앓던 사당동 치매지원센터 주변 공터를 치매노인들이 안심하고 배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채소와 꽃 나무를 텃밭에 심고 작은 이름표를 붙인 게 전부인 텃밭이지만 치매지원센터를 방문한 환자와 가족, 주변에 사는 노인들 발검음이 줄을 잇는다. 정원을 둘러본 뒤에는 뇌 모양 미로를 따라 글자찾기를 하면서 인지능력을 키우도록 했다.
노원구는 경증 치매노인을 위해 가족들이 함게 돌보는 '희노애락' 사업을 진행 중이다. 보호자가 도우미로 참여하는 돌봄교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쉼터 '노새노세 치매카페', 심리상담 공연 등 주민 재능기부로 지역을 순회하는 '함께 노세 열린카페'다. 김성환 구청장은 "치매 국가책임제와 함께 지역사회가 함께 치매환자를 돌볼 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