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4) 강간 중 피임 사건

건너 들은 변호사 조언 자의적 해석은 금물

2019-01-10 11:31:37 게재

평범한 여대생 A는 친한 동성 친구와 홍대 클럽에서 휴일을 즐기던 중 같이 술을 마시자며 접근해온 남자 B 일행과 함께 어울리게 됐다. 새벽 무렵 일행들과 술집에서 나온 A는 취기로 인해 갑자기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A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쉬며 기운을 차리기 위해 같이 인근 모텔에 들어갔다.

하지만 입실 전 성관계는 절대 맺지 않기로 미리 약속했던 B는 입실 후 돌변하여 A를 힘으로 제압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강간을 도저히 피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A는 임신을 피하고자 B에게 피임기구를 사용할 것을 애원했고 B는 이를 따랐다. 사건 직후 A는 B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피해자 조사를 며칠 앞두고 A의 친구는 "아는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A가 피임기구 사용을 요구한 것은 합의에 따른 성관계로 보일 수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고, 이에 무고 혐의를 받을까 두려워진 A는 수사기관에 피임기구 사용을 요청한 적이 없다는 거짓 진술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A의 진술을 의심한 수사기관은 이에 대해 집중 추궁했고 A는 결국 거짓말 한 것을 실토하게 됐다. 이러한 거짓 진술이 주요 증거가 되어 B는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A는 무고 혐의로 결국 기소돼 재판에 회부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강간 사건이 발생한 경우 조사를 앞두고 두려운 것은 피의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형법은 제156조에서 무고의 죄를 규정하고 있고,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은밀한 면이 많아 범죄 혐의 입증이 어렵다 보니, 진짜 피해자의 경우에도 혹시 무고 혐의를 받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일반적으로 피의자들은 실형이나 전과의 우려 때문에 변호사 상담이나 선임에 적극적인 반면, 피해자들은 가뜩이나 범죄로 인한 충격이 큰 상태에서 정신적 고통이나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적극적인 자기변호에 나서지 못해 이 사건처럼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에 유사한 사례를 검색해서 변호사의 글을 읽어보거나 이 사건처럼 '건너건너 아는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더라'라는 얘기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거기에 의지해 피해자 진술을 하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의사나 약사의 지도 없이 모르는 약을 마음대로 복용하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자신의 사건을 갖고 직접 상담하지 않고 얻어낸 변호사의 얘기를 임의로 자신의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은 이 사건처럼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건이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그 특성이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유사한 사건은 있어도 같은 사건이란 결코 없다. 더구나 법률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면 전혀 다른 내용의 사건을 비슷한 사건이라고 오인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조사에 대해 궁금하고 두렵고 무고의 위험도 피하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의 사건 자체로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와 직접 상담할 필요가 있다.

만약 A가 '친구가 아는 변호사'를 직접 만났더라면 그 변호사는 A에게 피임기구 사용 요청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의 증거로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언급을 했을 수 있지만, 거짓진술이 유리하다는 조언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강간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피임기구 사용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강압적인 상황과 피해자로서의 두려움을 진정성 있게 적극적으로 진술할 것을 조언했을 것이다.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