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국회의원과 장관 사이

의원·장관 겸직은 '환영' 의원배지 없는 장관은 '사양'

2019-02-15 11:26:52 게재

불안한 비정규직 '장관'보다 4년보장 계약직 '국회의원' 선호

의원 신분, 운신폭 커 … "중진차출론, 비현실적 요인 많아"

"밖에서 볼 때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들어와 보면 국회의원은 을중의 을이다. 언론, 지역구에 언제나 굽신굽신해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초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는 데도 욕은 욕대로 다 먹는다."

국회의원들이 쏟아내는 불만, 불평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재선'을 위해 목숨을 건다. 엄살인 것이다. 국민의 대표이면서 입법권, 예산심사권, 행정·사법부 견제권을 손에 쥔 권력의 크기는 견줄 게 없을 정도다.

얘기 나누는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 |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부터) 김부겸 행안부 장관,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그런데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때 아닌 '장관이 좋은가', '국회의원이 좋은가'라는 말장난같은 논쟁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위 '중진차출론' 때문이다.

변재일 원혜영 박영선 우상호 등 중진들이 조만간 이뤄질 개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왔던 박영선 우상호 의원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설'이 여당 내에서 새어나왔다. 본인들은 의사표시에 신중을 기하고 있고 청와대의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다.

'장관'과 '국회의원'을 저울에 올려놓은 데는 내년 4월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장관으로 가는 국회의원은 불출마선언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장관을 겸직할 수 있는 '특권'을 부담없이 누려왔다. 국회의원의 배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있으면서 장관 배지를 달고 이력에 '재상 자리'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를 고려한 헌법이 대통령제로 갈아타면서 남아있는 잔재를 현재의 국회의원이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장관자리는 많은 정책 결정뿐만 아니라 인사, 예산 등을 운영할 수 있고 홍보효과 등으로 대외이미지도 좋아질 기회를 제공하는 '다중카드'였다.

그러나 국회의원 자리를 던져놓고 장관을 선택하는 것은 모험이면서 도전이다. 중진차출론은 청와대의 요구보다는 당사자의 요구가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관보다는 의원 = 친문계(친 문재인계) 모 다선 의원은 "불출마하려면 앞으로 국회의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장관을 하고 나서 서울시장, 대통령에 도전하겠다는 것인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면서 "그런데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고 단정했다. 장관직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려는 국회의원이 있을지 의문이고 그런 국회의원이 현 정부에서 필요로 할 지도 모르겠다는 평가다.

만약 다른 곳에 가기 위한 발판으로 장관자리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라면 이또한 비논리적이라는 얘기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장관은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 직무수행중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그만둬야 한다"며 "무엇을 하더라도 의원신분을 갖고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장관과 4년간이긴 하지만 퇴출염려가 없는 '4년 계약직'으로 비교한 것이다. 어느 선출직을 노리든 당내 경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의원신분을 갖고 있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운신의 폭이 크고 당내 여론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의원신분'이었다면 법정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여당내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시각도 있다. 모 초선 의원은 "서울시장이라는 목표가 명확하다면 장관으로 가서 역할을 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면서 "당 입장에서는 후진을 위해 물꼬를 터주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또다른 여당 핵심인사는 "친문그룹의 배척정도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문 의원이 정부에 들어가면 친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했다.

◆'청문회'보다는 '총선' = 불출마 의원의 입각은 청와대와 여당의 입김보다는 개인의 입장이 주요한 변수다. 개각만 보면 청문회 통과가 중요한 쟁점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가장 중점으로 두는 인사 원칙엔 '압도적 총선 승리'가 있다.

앞의 친문 의원은 "내년 총선은 문재인정부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만큼 중요하고 반드시 압도적 과반 승리를 해야 한다"면서 "경쟁력 있는 의원을 장관으로 빼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장관으로 넣는 방식 또는 나이나 선수가 많은 의원이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장관으로 빠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여당 원내 핵심관계자도 "총선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유력한 의원을 장관으로 빼는 것은 당 입장에서 허용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당내 '물갈이론'이 강하지 않은 측면도 볼 필요가 있다. 이해찬 당대표는 의원 평가 하위 20% 물갈이 의견을 '감점'으로 전환한 다음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1952년생인 이 대표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60대 중후반이상의 의원 10여명이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실제 당내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당내 핵심인사는 "과거 이 대표가 공천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은 만큼 나이나 선수만으로 정무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물갈이론으로 기존 조직을 전수받지 못한 후보가 오히려 탈락, 지역구를 잃는 사례가 있어 조심스럽다"고 했다.

'중진차출론'은 개별 의원의 '모험' '도전'으로 읽히는 분위기인만큼 실제 차출된다 해도 규모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요 포커스 연재 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