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365일 언제나 열 수 있는 국회
'일 하라는 법' 위에 '일 안 하는 관례' 만든 입법부
본회의·상임위·소위, 열 수 있어도 안 열어
원내대표나 간사간 '협의' 조항, '합의'로 둔갑
국회는 항상 열려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국회파행기간 중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관례'가 됐다.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가 안 돼 본회의 안건 상정은 어렵더라도 상임위와 소위에서는 심사는 가능하지만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14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 상임위, 소위는 일정 기준만 채워지면 국회의장과 위원장의 결의에 따라 언제든 열수 있으며 안건을 논의할 수 있다.
헌법 47조에서는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해 소집된다'며 '임시회 회기는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기회는 매년 1회 소집되고 회기는 100일이다.
국회법 52조에는 '위원회는 본회의의 결정이 있거나 의장 또는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재적위원 4분의 1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 개회한다'고 했다. 국회법 57조에서는 '소위원회는 폐회 중에도 활동할 수 있다'며 '의안 심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자료제출을 정부와 행정기관 등에 요청할 수 있고 증인 감정인 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해놨다.
◆의장, 위원장의 '고독한 결단' = 국회 소집요구가 들어와도 국회를 열기 위해서는 교섭단체가 합의가 필요하다는 법 규정은 없다. '교섭단체나 간사의 합의 없는 본회의, 상임위, 소위 개회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국회의원들이 편의상 만든 '관례'다.
국회법 76조 3항은 '의사일정 중 회기 전체 의사일정의 작성에 있어서는 국회 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아니할 때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고 했다. 국회법 72조는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의원(원내대표)과 협의하여 그 개의시를 변경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회법 49조에서는 상임위원장 역시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는 간사와 '협의'하여 정한다'고 했다. '협의'는 '합의'가 아닌 만큼 자유한국당이 참여하지 않거나 거부하더라도 의장과 위원장의 결단에 따라 본회의와 상임위원회를 열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국회법 50조에서는 '위원장이 위원회 개회 또는 의사진행을 거부, 거부해 위원회가 활동하기 어려운 때에는 위원장이 소속하지 아니하는 교섭단체소속의 간사 중에서 소속의원수가 많은 교섭단체소속인 간사의 순으로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했다. 한국당 소속 상임위원장이 개회를 거부하면 민주당 소속 간사가 위원장 직무를 대행해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임계점 도달 = 두달 이상 국회가 정체에 빠져 국민들의 지탄이 높아지고 있어 국회의장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제 3당인 바른정당이 고심에 들어갔다. 한국당을 뺀 국회 개회가 충분한 명분을 축적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번주까지 한국당과의 국회 정상화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서 "바른미래당과 함께 국회를 소집하고 본회의 일정을 잡아 추경 시정연설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실 핵심관계자는 "문희상 의장이 현재 국회상황을 매우 위중하게 보고 있다"면서 "한국당을 뺀 나머지 정당이 소집요구해 오면 본회의를 열어 시정연설까지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임위원장인 여당의 모 의원은 "상임위와 소위는 언제든 열수 있기 때문에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개문발차'해 한국당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면서 "각종 현안이 많기 때문에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더라도 추경이나 법안을 심의하거나 외교, 경제, 사회 등 다양한 현안과 관련해 장관과 기관장을 불러 현안질의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률과 관례 사이 = 국회 안에서는 '법률'보다 '관례'가 앞선다. 한국당은 선진화법에 의해 보장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선거법 등을 지정했는데도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한 사례'가 없다며 원천무효, 사과를 요구하며 국회 보이콧을 장기간 이어가고 있다.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사례가 있었는데도 '법'과 상관없이 스스로 주장하는 '관례'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회의, 상임위 등의 개의 역시 원내대표(운영위원회)나 간사간 '협의'를 규정한 법을 무시하고 '관례'에 따라 합의를 주장하며 한국당은 '개의 불가' 입장을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주저하고 있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법에 따라 회의를 열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한국당 없이 법을 통과시키는 게 어렵고 국회 일정 자체가 모두 파행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민된다"면서 "이번주까지는 보고 장기 파행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열어야 한다고 판단된다면 결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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