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방 치료중 10대 사망, 1심은 양방 손들어 줘
2020-03-03 11:24:15 게재
'양약 복용 중단' 지시 한의사에 책임
부모에게 1억7천만원 손해배상 판결
의료기관 여러곳을 전전한 후 사망한 사건을 두고 법원이 책임을 따진 경우는 간혹 있다. 하지만 양방과 한방 동시 치료중 사망한 사건에 대해 책임을 따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한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유석동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B병원을 운영하는 D의료재단과 한의사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의료과실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A씨 유족은 딸의 사망에 B병원과 C씨 모두 책임이 있다며 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C씨 측 책임만 인정해 1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양약 대신 한약 복용 = 2014년 A씨는 B병원을 방문해 뇌종양의 일종인 두개인두종 진단을 받고 제거 수술을 받았다. 두개인두종은 뇌하수체 부위에 종양이 주변 뇌 구조물에 악영향을 주면서 호르몬 이상이나 시력 저하 등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수술 이후에도 배뇨 곤란 등 이상이 이어지자 A씨는 2015년 다시 B병원을 찾아갔고,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수두증 진단을 받고 2차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꾸준한 치료를 받던 A씨는 2016년 3월부터 C씨가 운영하는 한의원을 찾았다. C씨는 A씨에게 양약을 끊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A씨는 혈전 치료제인 자렐토만 복용한 뒤 C씨가 처방해준 오령가감방(계지 인삼 백출 황기 등)을 복용했다.
A씨는 통증을 호소했지만 C씨는 '양약에 대한 의존성'이라며 한약 복용을 지시했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A씨는 패혈증 진단을 받았고 얼마 안돼 사망했다. 당시 나이는 만 18세였다.
A씨 부모는 B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은 합병증을 고려하지 않은 수술 결정, 오진 등을 이유로 의료과실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의사 C씨에게는 양약 복용 중단을 지시해 병을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병원 측은 "A씨에게는 수술 전부터 뇌하수체 이상이 발생한 상황이었고 수술 후 합병증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C씨 역시 "A씨는 양약복용 중단에도 상당기간 양약을 복용했고, 동일 효능의 오령가감방을 처방했다"며 "패혈성 쇼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늦게 응급실을 가서 사망을 한 것"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한의사 책임 30%로 제한 = 재판부는 수술과 응급실 내원시 조치와 관련해 양방 병원의 책임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1차 수술 이후 A씨에게 발생한 수두증, 뇌하수체 기능저하 등 흔히 동반되는 합병증에 해당한다"며 "수술 위험성 등에 비춰 망인에게 발생한 증세가 의료진 수술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의사 C씨에 대해서는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C씨에게는 A씨의 필수 내분비약 복용을 중단하는 대신 이뇨작용을 하는 한약재를 복용하게 해 고나트륨혈증을 발생시키고 면역력 약화 등을 초래한 과실이 있다"며 "진료상 과실과 패혈성 쇼크로 인한 사망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A씨는 고나트륨혈증이 심했는데 이는 뇌하수체 호르몬제인 약물 복용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이뇨작용을 수행하는 한약을 복용한 것과 높은 관련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C씨는 A씨에게 한약을 투여하기 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 내지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해, 한약 처방을 선택할 수 있고, 부작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면서 "한약처방 전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의무위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C씨의 책임은 3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A씨는 면역력이 낮고 신체적 기능이 약화돼 감염에 취약한 상태였던 점, 병원에서 내분비약 복용상황, 한의원 내원 사실 등을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행위는 모든 기술을 다해 진료해도 예상외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