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상장사 감사계약' 악재로 작용
감사보수 놓고 기업·회계법인 마찰
"M&A시장도 급속히 얼어붙을 것"
사업보고서 제출에는 영향 적어
코로나19 사태가 기업의 감사계약 체결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상장회사들은 회계법인과 감사계약을 끝냈지만 비상장기업 상당수는 감사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중견회계법인의 대표회계사는 "감사보수를 놓고 비상장사들과 실갱이를 벌이고 있다"며 "보수가 지나치게 낮은 기업은 계약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상장회사와 동일하게 감사시간을 투입하는데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보수를 책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2월 결산법인은 2월 14일까지 감사인 선임계약을 체결하고 2주 이내에 금감원에 감사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감사인도 감사계약체결보고서를 내야 한다. 따라서 늦어도 2월말까지 감사계약이 끝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감사보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상장회사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비상장회사에서 반발이 크다. 한 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도 "기업실적이 크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감사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표준감사시간제도 도입으로 회계법인과 기업의 감사계약이 지연되면서 감사인 선임기한을 탄력적으로 집행했다. 법정기한은 2월 14일까지였지만 3월 15일로 한달 간 늦췄다.
당시 금융위는 "금년에 한해 3월 15일까지 감사인을 선임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재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회계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기업 간 인수합병(M&A)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빅4회계법인의 한 파트너 회계사는 "M&A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을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거래도 인수가격과 매각가격의 차이로 인해 원활하게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사를 앞두고 있는 M&A협상은 코로나19로 인해 실사가 늦어지고, 이미 협상이 진전된 거래 역시 기업의 실적 하락에 따라 인수하는 곳에서 가격인하를 요구하거나 거래 자체를 뒤집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푸르덴셜생명의 매각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매각주관사인 골드만삭스는 오는 19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본입찰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인수자들과의 경영진인터뷰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돼 이뤄졌고, 코로나19사태가 심각해지면 본입찰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한편 회계업계에서 우려했던 감사 대란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불가피하게 사업보고서 등을 기한 내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행정제재를 면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연제출 우려가 있는 회사는 이달 18일까지 금감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신청을 하도록 했지만 9일 기준 8개 회사만 신청을 한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업보고서 제출은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약속이라서 제때 공시를 하지 않으면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며 "되도록이면 최대한 정해진 시한 내에 제출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중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이 연결재무제표 작성 문제로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이 늦어질 수 있지만 중국도 우한 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기업들은 출근을 하고 있는 만큼 해당 지역 회계법인을 통한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 가야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중국 현지 회계법인들의 감사결과를 받아서 연결재무제표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대구·경북지역 기업들에 대해서는 회계감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사무소가 있는 비교적 큰 기업들은 전산망을 이용해 회계사들이 대구·경북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사무소에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사무소가 없는 기업들은 감사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업보고서 제출연기를 신청한 8개 기업들 중 빅4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은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