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어떤 경제적 상흔 남길까
블룸버그 "쇼핑·여행·근무 스타일에 장기적 변화"
모든 경제위기는 상흔을 남겼다. 현재 확산중인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도 예외일 리 없다.
1930년대 대공황은 '낭비하지 않으면 아쉬운 일도 없다'(waste not want not)는 태도를 촉발했다. 이후 수십년간 미국 소비자들의 행동을 규정한 말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준 값비싼 교훈은 지금도 독일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에 녹아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축통화(달러)를 쟁여놓은 지역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선진국들에선 노동자들의 임금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번엔 공중보건 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몇주 동안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지역의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변했다.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필수품을 사재기하고 있다. 친교와 사업 모임은 물론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하고 있다. 재택근무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은 나라들조차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5일 "이같은 행동 변화는 코로나19 충격이 완화된 이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될 전망"이라며 "이는 수요에 대한 제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당연히 공급측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제조사들은 어디서 생산하고 어디서 구매해야 할지 재고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전쟁이 특정 국가에 대한 부품의존도가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 보여준 이후, 코로나19가 그같은 변화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사무직의 경우 각 직장들이 점차 원격근무 또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거나 교대근무 시간을 조정해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직장인의 정규 스케줄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의 매크로 트렌드 그룹 운영이사인 캐런 해리스는 "일단 효과적인 재택근무 정책이 수립되면, 앞으로도 그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금지로 타격을 입은 대학들은 외국 유학생 기반을 다각화할 전망이다. 초중고교들은 코로나19로 폐쇄될 경우에 대비해 온라인 강의를 준비할 필요가 커진다.
여행업은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항공사와 크루즈, 호텔 등 여행업으로 먹고 사는 부문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여행객들은 다시 전 세계를 누비겠지만 전체 고용 중 10% 정도를 차지하는 여행업이 회복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는 각국의 경제정책 전망, 정책 우선순위도 즉시 바꿔놓았다. 중앙은행들은 다시 긴급조치에 돌입했다. 반면 재정당국들은 비틀거리는 산업 부문을 부양하기 위해 재원을 끌어모으고 있다. 위생정책은 정부는 물론 기업의 최우선 어젠다로 부상했다. 싱가포르는 의무적인 청결 기준을 법령화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중앙은행 통화정책 이사를 지낸 몸마 가즈오는 "코로나19 위기는 불확실성의 정도와 사회적, 경제적 충격 측면에서 전례가 없다"며 "국경통제 강화, 광범위한 보험 보장, 근무와 통근 패턴의 장기적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오랜 기간 지속하는 미시경제적 변화 중 일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말 처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한 중국의 경우 이미 야생동물의 거래와 소비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추가적으로 엄격한 위생 규정이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 행태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2003년 사스 발병 당시 중화권 사람들은 대중이 많이 모이는 쇼핑몰을 피하고 온라인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베인앤컴퍼니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단호하고 즉각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군중이 모이는 대기실이나 병동에서의 감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건강검진이나 상거래가 온라인채널로 급격히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루킹스연구소와 호주국립대 워릭 매키빈, 로셴 페르난도 교수가 공동으로 작성한 '코로나19의 거시경제적 충격'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전염병과 관련된 막대한 비용을 사전에 줄이려면 보건의료에 더 많은 예산을 할당할 필요가 있다.
매키빈 교수는 "글로벌 공동체는 가난한 나라들에서의 감염 방지를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 보고서에서 2003년 사스 전염병으로 전 세계 경제 피해액이 40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인명과 경제의 최종 피해는 얼마나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경제학자들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있다. 의견도 각각 다르다.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는 "일단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된다면 지금 벌어지는 혼란의 상당 부분은 과거처럼 잦아들 것"이라며 "대부분 기업, 특히 글로벌 대기업들은 정상적 활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 연구원인 폴 시어드는 "경제위기 이후의 결과들은 동일할 수 없다. 때문에 예측에 주의를 요한다"며 "이번 위기가 어떤 상흔을 남길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총리실 자문관을 지낸 파브리지오 파가니는 이전의 위기를 참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각국은 처음으로 에너지 보호정책,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충격은 은행과 금융 부문에 새롭고 상당히 급진적인 금융규제 틀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위기로 온라인학습·원격학습에서부터 기업의 사업모델, 정부의 산업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 MBA 교수인 마이클 머프리는 "브렉시트와 미중 무역전쟁, 이제는 코로나19 팬데믹 등 3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 제조업 공급망이 재편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컬럼비아대 금융시장·규제 전문가인 캐서린 저지 교수는 "2008년 미국 금융시장 붕괴가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의 주택 자가보유율을 낮추면서 깊은 상흔을 남겼다"며 "전 세계 국가들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비상조치를 취하면서 현재 위기 역시 미래에 중대한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지 교수는 "미국 보건의료 시스템을 개혁하는 방법을 두고 오랜 시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며 "현재의 긴급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각성하면서 보건의료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그같은 추동력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핵심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해진 조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에 미칠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또 비판의 초점을 팬데믹(세계적 유행병)의 시발점인 중국에 돌리고 있다.
수십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했던 제임스 보튼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시장이 붕괴됐고, 이는 이들 나라에서 과감한 개혁의 촉매제가 됐다"며 "위기가 닥치면 각국 정부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개혁에 나설 수 있다. 모든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