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국가 빚, 어떻게 달라질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지난 1세기 사례 분석
지금은 정부 부채를 걱정하는 시기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치솟고 경제활동이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인명과 경제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모든 가용자원을 쏟아붓는 게 맞다.
이런 긴급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위기는 국가부채 규모를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에 따르면 지난 20세기 주요한 글로벌 위기 때마다 주요국 정부의 부채는 크게 늘었다. 각국 정부는 종종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해 금융권을 다그쳤다. 현재의 코로나19 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각국의 경제부양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썼던 대책을 압도할 전망이다. 미국의 부양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한다. 국가 산출량과 세수에 미치는 타격은 그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최소 상당수 국가들은 GDP 대비 150%를 넘는 부채를 지게 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과거 100여년 동안 정부 부채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시작에서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가 첫 시기로, 각국은 전쟁과 피해복구, 대공황 등을 겪으며 부채를 크게 늘렸다. 당시 각국 정부는 종종 시장의 심리에 휘둘렸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부채가 GDP의 140%까지 치솟은 영국은 빚을 줄여 시장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방안을 택했다. 고통스런 긴축정책을 폈다. 영국 정부는 덕분에 1920년대 약 GDP의 7%에 상당하는 재정흑자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파장은 참혹했다. 경제성장을 짓눌렀다. 1928년 영국의 GDP는 1918년보다 낮았다. 그 결과 부채는 계속 늘었다. 1930년 부채는 GDP의 170%에 달했다. 이런 쓰라린 경험에 대해, 당시 대표적 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확실히 정부의 긴축재정은 공익에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영국보다 더욱 절박한 조치를 취해야 했던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패전으로 온 나라가 와해돼 부채를 갚을 길이 없었던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 나락에 떨어졌다.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해 GDP 대비 부채 부담을 129%나 줄여주는 역설적 상황도 발생했다. 당시 채무불이행(디폴트)은 흔한 사례였다. 1933년 글로벌 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디폴트 또는 채무재조정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가 두 번째 시기였다. 이 시기 선진국 정부들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이전 30년 동안의 트라우마 때문에 긴축정책은 빚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정치적으로 가능한 수단이 아니었다. 일부 국가들은 빚을 갚지 못하거나 전후 극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다른 나라들은 은행을 압박하는 방법을 썼다. 즉 정부에 유리하고 은행에겐 불리한 조건으로 재정을 조달하는 것이다. 2차 대전 동안 전쟁비용을 대기 위해 은행을 압박하는 많은 조치가 취해졌다.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국채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국채를 대량 매입해야 했다. 각국 정부는 또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통제하거나 여신을 제한했다. 자국 예금자들이 더 높은 이자를 주는 다른 나라에 돈을 맡기지 못하도록 자본통제 정책도 꺼내들었다.
그같은 정책의 목적은 자국 기관과 가계에게 사실상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율로 정부에 돈을 빌려주라'고 강제하는 것이었다. 전시 가격통제가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라서 국채 이자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였다. 이런 상황이 전후 수십년 동안 지속됐다.
하버드대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학자 벨런 스브란시아의 논문에 따르면 1945~1980년의 36년 중 약 절반의 기간 동안 선진국 전반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였다. 같은 기간 영국 정부가 부담한 평균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 1.7%, 프랑스는 마이너스 6.6%였다. 그에 따른 효과는 강력했다. 1946~1961년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68%p 하락했다. 1970년대 선진국 전반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5%로 줄어들었다.
세 번째 시기는 1970년대 시작됐다. 선진국 정부들은 자본흐름과 금융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늦추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글로벌 자본시장의 손에 맡겼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통합은 투자보다 저축이 많아지는 흐름, 기축통화국 국채에 대한 수요 상승 흐름과 맞물렸다. 때문에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이자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같은 흐름은 더욱 강해졌다.
부유한 국가들의 공공부채는 2007년 GDP 대비 59%였지만, 2013년 91%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선진국 정부들은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제로에 가까운 금리 또는 마이너스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사례를 보면 현재의 코로나19는 앞으로 국가부채가 더욱 늘어날 것을 의미한다"며 "정부부채의 새로운 차원이 시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현재의 위기가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부채 상황은 1,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상황과 비슷해질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의 이런저런 시도들은 기술과 인프라에 새로운 투자를 촉발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가용한 저축에 손을 뻗으려는 경쟁이 심해져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이자율이 높아질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국경 폐쇄의 여파로 상품과 자본에 대한 장벽이 높아진다면, 각국 정부는 이자율을 관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중앙은행들을 압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팬데믹이 누그러진다 해도 경제성장에 다시 시동을 거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이고 있다. 연준은 무제한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7500억유로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선언했다.
경제회복이 지지부진할 경우 중앙은행은 어쩔 수 없이 새롭게 돈을 찍어 정부의 거대한 재정적자를 메워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일찍부터 경험한 것이다. 일본의 상황은 한때 경제적 예외사례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에 보다 널리 확산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이 큰 규모의 돈을 찍어 정부의 재정을 대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조차 없다면, '빚 내기는 신중해야 한다'는 통념은 크게 바뀔 것"이라며 "위기가 상식을 바꾸는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