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아동성착취범 검거에 아동 위장수사 활성화해야

아동으로 가장한 경찰에 대화 시도, 유죄받아

2020-04-08 12:49:22 게재

호주 퀸즈랜드주 법에 함정수사 규정 명시해

영국·미국도 성착취 의도 드러나면 기소·처벌

n번방사건을 계기로 아동성착취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서는 아동으로 위장한 함정수사를 활성화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한 후에 개입하면 늦다. 위장수사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극 개입해 범죄를 차단할 수 있다. 채팅 상대방이 아이가 아니라 경찰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성년자에게 함부로 만남을 제안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위장수사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 주>


한국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범 검거를 위한 함정수사를 널리 활용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하지만 외국은 이미 온라인 함정수사를 통해 범행의도가 발각되면 기소되고 처벌된다. 호주는 법으로 함정수사를 허용하고 있고, 영국은 민간단체 함정수사를 통해 성착취범을 재판에 넘겼다. 미국에서도 수사관이 온라인 프로필을 만드는 방법으로 함정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3년 네덜란드의 아동 인권 보호 단체인 '인간의 대지'가 '스위티'라 불리는 가상 소녀를 이용해 10주 동안 전 세계에서 아동 성매수자 1000명을 적발했다.사진은 가상 10세 소녀 스위티의 모습. 자료 유튜브 영상


◆허구 인물과의 대화도 처벌 = 지난해 10월 경기대학교 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등이 쓴 '온라인 기반 청소년 성착취 체계 분석과 법·제도적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는 허구의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를 유인하기만 해도 처벌된다.

호주 퀸즈랜드는 성인이 성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해 미성년자를 알선하는 것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최초로 시행했다. 가해자를 '인터넷 등을 사용해 16세 미만 아동을 알선'하는 행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했다. 이 조항은 가해자인 성인이 허구의 아동청소년과 한 대화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함정수사의 법적근거인 셈이다.

2004년 케닝 사건(R v Kennings)에서는 랜덤채팅 방에서 함정수사를 하는 경찰관을 13세 여아로 믿어 그루밍한 후 약속장소에 나오자 잠복해 있던 경찰관이 그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여아로 가장한 경찰관이 "성경험이 없다"고 말하자 가해자는 "굉장히 좋은 것"이라며 유혹한다. 가해자가 이메일로 과거 자신의 사진을 보냈고, 여아로 가장한 경찰이 10대 모델 사진 중 자극적인 사진을 선택해 "나와 닮았다"고 유인했다. 결국 가해자와 가상의 아동은 한 광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가해자는 현장에서 경찰에게 검거됐다. 가해자는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민간단체' 함정수사로도 성착취범 검거 = 영국의 레지나(REGINA vs TL) 사건에서는 국가가 아닌 민간단체 함정수사로 잡힌 범인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가해자는 '왓츠앱'에서 14세 소녀로 추정되는 인물과 성적인 행위를 목적으로 대화했다. 그런데 대화상대는 사실 '약탈자 사냥꾼'이라는 단체를 운영하는 성인 남성이었다. 당시 가해자는 프로필에 "나와 나의 여성 파트너는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길 원하는 소녀를 찾는다"고 작성했고, 민간단체 운영자가 프로필에 14세로 명시하고 가해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운영자는 경찰에 이 대화내용을 알렸고, 가해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14세 소녀와 만나기로 약속했고, 결국 경찰이 아파트를 덮쳐 그를 체포했다. 성적 그루밍을 한 아동을 만나려는 시도만으로 기소됐다.

◆수사관, 성착취범 유인 '닉네임' 만들어 = 미국도 아동 성착취 피의자 체포를 위해 함정수사를 널리 활용한다. 인터넷상 소셜미디어 사이트나 채팅을 통해 성인과 대화를 하다가, 성과 관련된 노골적인 영상물이나 메시지를 보내거나 실제로 성관계를 목적으로 만남을 계획하는지 여부를 판단해 체포한다.

미국 온라인 함정수사 과정은 수사관이 온라인 프로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수사관이 성착취 가해자들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는 닉네임을 만든다. 가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가짜 사진도 사용된다. 채팅 중 가해자가 개인의 나이와 성별, 위치 등을 물은 뒤 사진을 요청할 경우 일부 기관은 공인된 사진을 활용하도록 허가한다. 성착취 가해자의 범죄의도에만 근거해 처벌하기 때문에 대부분 미국 연방법은 1급 범죄가 아닌 2급 범죄로 취급한다는 것이 보고서 내용이다.

1996년 한 남성이 온라인 채팅방에서 에이미(Aimee)라는 15세 소녀를 만나 대화했다. 가해자는 에이미에게 아버지와의 성관계를 묘사할 것을 요구하면서 만남을 원했다. 그러나 이 소녀는 함정수사를 하는 주 경찰이었고 그는 체포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한국형 스위티 프로젝트 추진하자" = 2013년 네덜란드의 아동 인권 보호 단체인 '인간의 대지'가 '스위티'라 불리는 가상 소녀를 이용해 10주 동안 전 세계에서 아동 성매수자 1000명을 적발했다. '인간의 대지'는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필리핀 소녀 아바타를 만들어 온라인 채팅방에 사진을 올려놓는 방법으로 함정수사를 했다. 10주 동안 2만명이 스위티에게 접근했다. '인간의 대지'는 온라인 성행위를 요구한 1000명의 정보를 인터폴에 넘겼다.

국민의당은 3월 27일 '한국형 스위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범에 한해 함정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기획] 아동성착취범 검거에 아동 위장수사 활성화해야" 연재기사]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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