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나는 시간을 그린다’ 저자 김국주 화백
“영원히 현재인 4차원 사건, 화폭에 담았다”
그림 에세이 ‘나는 시간을 그린다 1·2’ 출간 … 우리 마음에 공명하며 작은 위로 건네
“팔순을 맞으며 나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였습니다. 중학생 시절 이후 그림에는 남다른 열정이 있어 매우 아름답거나 절실했던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겨 왔기에 이 그림들로 인생 스토리를 엮었습니다.”
최근 출간된 ‘나는 시간을 그린다 1·2’(북랩)의 저자 김국주 화백의 일성이다. ‘나는 시간을 그린다’는 금융인 출신의 화가가 평생 그려온 작품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15일 김 화백에게 ‘나는 시간을 그린다 1·2’의 특징에 대해 물었다.
“연도는 무시하고 1년 365일의 각 날에 그린 그림 중 하나씩을 골라 거기에 시와 수필의 중간쯤 되는 글을 달았다. 총 두권으로 된 이 책에서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마다의 계절과 풍경, 추억과 시간을 담은 그림과 글이 펼쳐지는데 슬프고 힘든 순간도, 기쁘고 평온한 순간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통째로 한 덩어리의 시간인 듯하다. 365일을 담은 이 그림 에세이 전체가 통째로 그림 한점일 수도 있다.”
김 화백은 그림의 순서에서 연도를 무시한 이유에 대해 “1945년 또는 2024년 등 연도는 직선이다. 그러나 365일 또는 4계절은 직선이 아닌 순환”이라며 “책의 제목을 한 때 ‘계절의 동심원의 가운데에서’로 하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2권에는 ‘Aspicio ergo sum’이라는 부제를 덧붙였다. 이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을 패러디 한 것으로서 Aspicio는 바라보다는 뜻의 라틴어다.
김 화백은 “등대(10월 17일)의 비유를 통해 등대가 등대를 보지 못하듯이 나의 생물학적 눈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예술적 또는 영적 눈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이때 비로소 생물학적 나 이상의 나의 존재가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생물학적 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화백은 “책 두권을 마치는 글에서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희곡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영적 존재는 나의 생물학적 존재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실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아낌없고 후회 없는 나날을 살아가자고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의 글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많은 성찰이 느껴진다. 그는 서문에서 “3차원의 사물에 시간이라는 좌표가 첨가된 4차원의 사건을 화폭에 담았다”고 썼다.
이에 대해 김 화백은 사과를 예로 들어 “사람의 눈은 한 순간에 하나의 평면만을 볼 수 있다. 사과가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3차원의 사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사과를 돌리거나 사람이 사과의 뒤쪽으로 돌아가 보기 때문이다. 화가가 사과를 종이라는 평면 위에 그린다면 그는 3치원의 사물을 2차원의 평면에 그려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정지된 사과가 아닌 변화하는 사과를 예로 든다. 그 때, 그 시간의 사과를 그림으로 그렸다면 그는 3차원의 사과에서 한 단계 발전한 4차원의 사과라는 사건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5년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양친의 고향인 제주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외환은행에 입행한 직후인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 독방에서 6개월을 보냈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완역해서 독서 서클 회원들과 나누었는데 그것 때문에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혐의를 받았다.
그는 그 때를 회고하며 “남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을 나의 손아귀에 쥔 채 죽어야 하는 자의 비통함이 어떤 것일까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다. 외환은행에 복직한 이후 뉴욕 런던 시애틀 등 해외 지점에서 근무했다. 외환은행을 떠나 삼양종합금융 대표이사로 있을 때 IMF 외환위기가 터져 많은 고초를 겪었다.
김 화백이 “IMF로 선진 금융가의 꿈이 무너졌던 50대 초반도 힘든 시간이었다”며 “실직자로서 수원으로 이사해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을 밤마다 달리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이때의 5년 동안 그림도 가장 많이 그렸던 것 같다”고 말할 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그 어떤 예술가보다도 따뜻하다.
그가 바라본 세상의 풍경과 자연, 가족과 추억, 행복과 사랑이 한 덩어리가 돼 두 권의 화집에 고스란히 담겼다. 순간이므로 영원히 현재인 그림들이 우리 마음에 공명하며 작은 위로를 건넨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