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동성착취 범죄’ 이제는 근절해야 한다

2020-04-08 12:47:24 게재
강선혜 탁틴내일/ECPAT Korea

지난 엑팟(ECPAT, End Child Prostitution and Trafficking, 아동 성착취 근절을 위한 NGO)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한국은 ‘포르노’가 불법인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청소년들이 포르노를 쉽게 볼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적이 있다.

성인물을 보는 것을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여기는 서구 문화권과 달리, 우리는 심심치 않게 성적인 사진이나 ‘짤’을 농담거리로 주고받고 포르노를 보는 것은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불법행위를 하나의 문화 혹은 관행으로 취급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성범죄를 관행으로 넘기는 문화가 문제

미국 범죄학계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분석할 때 ‘관행’을 범죄자가 불법행위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여긴다. ‘사업가라면 다 이렇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은 범죄행위를 부정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것이다. 엄연히 불법인 포르노를 ‘모두가 다 보니까’ ‘안 보면 바보취급 당하니까’라는 이유로 당연시하는 것 또한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변명과 다르지 않다.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과 또 다른 가해자 태평양은 20대와 10대다. 이들이 특별히 이상 성욕구가 있어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잔인한 범죄를 자극적인 소재로만 다루는 것이다. 유영철 강호순 등의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들을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 한니발 렉터와 같이 취급하며 ‘사이코패스’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들이 정상적인 심리상태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모든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버리려는 것이 문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매우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범죄다. 이를 단순히 이상 성범죄자의 특이한 범죄로 뭉뚱그리고 넘어가면 안된다. 제2, 제3의 조주빈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국제 성범죄 예방 및 보호단체들은 온라인에서의 성착취 문제,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착취에 대한 위험을 지적해왔다. 엑팟 인터내셔널에서도 온라인 아동성착취(OCSE, Online Child Sexual Exploitation)를 심각한 범죄로 보고 있다. 작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온라인 아동보호를 위한 국제컨퍼런스’와 엑팟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회의 등을 통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국제협력수사 위해 법률개정하는 국가도

호주에서는 온라인 아동성착취물(CSAM, Child Sexual Abuse Material)에 대해 전담 수사기관이 수사를 전담한다. FBI에서도 OCSE를 강력범죄로 규정하고 전세계적인 수사망을 확보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국제적 기업에서는 시스템이 OCSE에 악용되지 않도록 보안 규정을 추가했고 모니터링 팀을 구성하거나 부모들을 위한 보안시스템 교육 등을 실시한다고 보고했다. 독일의 ECO는 CSAM 관련 링크를 클릭할 때 사용자에게 한번 더 생각해볼 것을 권고하고 상담 링크를 제공한다.

OCSE나 CSAM은 이미 국제적인 문제다. 인터넷으로 인해 물리적 거리가 사라진 지금 온라인 성범죄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그물망처럼 주변 국가들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미 발빠른 국가들에서는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협력수사를 위한 법률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아동성착취 범죄와 관련해 우리도 갈림길에 섰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성범죄 대응 선진국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n번방 사건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