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착취범 검거에 아동 위장수사 활성화해야 ③
"위장수사관 신분보장·수집증거 인정, 입법으로 보완을"
'비밀방 접근위한 불법 허용여부' 난제 풀어야 … "민간단체 전문성 활용, 수사기관 고민"
n번방사건을 계기로 아동성착취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서는 아동으로 위장한 함정수사를 활성화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한 후에 개입하면 늦다. 위장수사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극 개입해 범죄를 차단할 수 있다. 채팅 상대방이 아이가 아니라 경찰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성년자에게 함부로 만남을 제안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위장수사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 주>
박근혜정부는 성폭력 등 이른바 4대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고 약속했다. 출범 첫해인 2013년 3월 여성가족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소년 성범죄 근절을 위해 '유도수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함정수사'를 완곡히 표현해 추진방침을 밝혔지만, 그 후 더 이상 진전없이 유야무야됐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여가부 한 인사는 8일 "법조인들은 한결같이 유도수사가 법체계에 안맞는다고 반대했다"며 "법조인 출신 장관이 오다보니 법률자문을 그런 쪽으로 많이 받아 추진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n번방사건을 계기로 함정수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함정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해자 신고나 인지수사 어려워 = 함정수사가 필요한 이유는 기존 수사방식으로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진화하는 온라인 범죄 시스템을 수사기법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n번방도 잠입수사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알려졌겠냐. 피해자는 자기 신상이 다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절대로 신고를 못한다. 같이 관련된 조직원들, 관람한 가입자들이 자기 신상을 다 인증하고 시스템에 들어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들한테 경찰에 신고를 한다든지 하는 걸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동성매매나 아동성착취물 같은 경우에는 경찰이 오프라인이나 또는 온라인에서, 네트워크 표면에서는 원천적으로 접근이 어렵다"며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실태를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송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중현)도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미성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나 고소를 하기 어렵다"며 "수사기관에서 인지수사를 하기도 어려워 수사 효율성을 위해 함정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으로 가능, 입법보완 필요 = 전문가들은 함정수사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면서도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디지털성범죄가 이루어지는 사이버 공간에 수사관이 잠입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로서 현행법상 허용된다고 판단된다"면서도 "수사관들의 능동적 수사활동을 보장하고, 위법수집증거 논란을 배제하기 위해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의한 함정수사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그와 같은 수사를 통해 수집된 증거는 형사소송법상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규정에 우선해 유죄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지은 변호사도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합법으로 판시하고 있다"면서도 "함정수사의 적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함정수사의 세분화된 기법에 대한 입법을 통해 인권 및 적법성 논란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위장 수사는 수사기관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수집한 증거를 검찰이나 법원에서 받아들일지가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는 "현행법 체계에서도 함정수사는 가능하다"며 "범죄를 근절하고자 하는 정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증거인정이 중요, 법에 명시해야 = 한편 이수정 교수는 "지금 법상으로 아동위장수사가 가능하지 않다"며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아동성착취 범죄 수사는 마약수사에서 하는 것과 같은 함정수사 방식으로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비밀방에 들어가는 요건 자체가 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며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침을 마련하거나, 또는 법 안에 수사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조항을 넣거나, 그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인정해 줘야 그렇게 얻은 증거들을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결국은 증거로 인정이 돼야 의미가 있다"며 "어디까지를 어떻게 하면 증거로 인정을 해준다, 이런 정도의 내용을 담은 법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혜미 변호사(법률사무소 오페스)는 "디지털 성범죄 수사는 온라인에 맞추어 진화할 필요가 있고 적합한 수사기법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만이라도 제한적으로 함정수사를 허용할 필요가 있고, 이를 무분별하게 악용하거나 피해자의 불필요한 양산이 없도록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 입법으로 가이드라인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n번방 사건처럼 유료회원방에 위장잡입하기 위해 일정한 음란물을 업로드해야 회원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경우라면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음란물을 위장수사 잡입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지 난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허용되는 기법의 요건과 한계를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루밍 범죄화하면 문제해결 쉬워져" = 위장수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루밍(길들이기) 범죄화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수정 교수는 "어른들이 아이를 성적으로 유인하는 행위 자체를, 외국처럼 그루밍 행위 자체를 제재하면 대화도 범죄가 된다"며 "그루밍을 범죄화하면 문제해결이 쉬워진다"고 지적했다. 범죄자가 아동청소년에 접근해 대화를 하는 게 현행법으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그루밍을 범죄화하면 이를 처벌할 수 있어 위장수사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 있는 민간단체와 연계 중요성도 지적됐다. 김예원 변호사는 "n번방을 파헤친 것도 전문성 있는 민간단체였다"며 "민간에 직접 조사권을 주는 것은 형사법 체계상 어려울 수 있으니, 형사법 체계안에 어떻게 그들이 입수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할지 수사기관이 본격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중범죄나 다름없는 마약사범이나 아동성착취범에게 범의가 존재하지 않는데 함정수사에 걸려드는 경우는 전무하다"며 "사술이든 계략이든 그와 같은 범죄를 행하겠다는 고의가 있었기에 함정수사에 걸려든 것이고, 함정수사가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를 양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