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속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거듭난다
한국형 방역모델 선진국 넘어 개발도상국으로 확산
감염병 전문가 양성 … 코로나19 대응에서 '효자 노릇'
코이카 의료지원 우즈벡·캄보디아에서 놀라운 성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여러 영역에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올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전염병, 대공황, 전쟁 이후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 이후, 유럽에서는 국가가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시스템(National Health Care Service)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1929년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 이후 근대적 복지국가 틀이 마련됐다. 전염병과 대공황,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변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듯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과 국제질서에도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소프트파워 = 세계를 선두에서 이끌던 서구세계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국가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보건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미국과 유럽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면서 리더십을 상실하고 있다. 위기 속 통합과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패권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대안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최근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적이 또 있었을까? 이스라엘 전략연구소인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센터(BESA)는 최근 한국을 소프트파워(연성권력)를 보여준 모범국가로 극찬했다. BESA는 한국이 2019년 소프트파워 순위에서 19위였지만 코로나사태 이후에는 그 순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BESA의 소프트파워 순위는 영국포틀랜드커뮤니케이션이 매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USC) 공공외교센터와 페이스북 협조를 받아 세계 30개국의 문화 지식 등을 기반으로 한 영향력을 평가한 결과다.
지난해 소프트파워는 프랑스(1), 영국(2), 독일(3), 스웨덴(4), 미국(5), 스위스(6), 캐나다(7), 일본(8), 호주(9), 네덜란드(10), 이탈리아(11), 노르웨이(12), 스페인(13), 덴마크(14), 핀란드(15), 오스트리아(16), 뉴질랜드(17), 벨기에(18), 한국(19), 아일랜드(20) 순이었다.
그런데 소프트파워 상위국가의 코로나19 대응 성적표는 실망스럽다. 5월 13일 현재 확진자는 미국(140만8636), 스페인(26만9520), 러시아(23만2243), 영국(22만6463), 이탈리아(22만1216), 브라질(17만7602), 독일(17만3171), 터키(14만1475), 프랑스(14만227), 이란(11만767) 순이다. 소프트파워 1위 프랑스는 확진자 순위 9위, 2위 영국은 4위, 3위 독일은 7위, 5위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사망자는 3만2692명으로 미국(8만3425)에 이어 사망자 2위 국가가 됐다. 소프트파워 강국 미국과 영국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들이다. 진주만 공격으로 2335명의 미군과 68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로 2996여명이 사망하고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5월 13일 현재 미국 코로나19 확진자는 140만8636명이고, 사망자는 8만명을 넘어섰다. 진주만 공격으로 사망한 2335명과 9.11 테러 사망자 2996명을 합한 5331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코로나 이후 세계 리더십이 새로운 주자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드파워에 기초한 강대국들의 리더십이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영향력과 리더십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처럼 군사력, 경제력 등의 하드파워(경성권력)가 아닌 소프트파워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코로나19 퇴치 과정에서 한국이 보여준 문화, 정신적 가치와 대외정책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봉쇄조치와 인권침해, 국가 간 이기주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투명성·개방성·민주성에 기반한 한국의 방역이 모범사례로 주목받는 이유이다. 세계각국 정상이 직접 진단 키트와 방역 노하우 전수를 요청하는 경우가 폭주하고 있다.
5월 11일까지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66개국에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전수했다. 외교부 이태호 2차관은 지난 11일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국제 방역협력 총괄 태스크포스 3차 회의에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포함해서 66개국, 그리고 23개 국제기구 등을 대상으로 웹세미나와 영상회의 등 총 250회가 넘는 국제 방역협력 활동을 했다"며 "국제 방역협력에 적극 대응해서 우리 제도와 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를 비롯한 보건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유엔 보건안보 우호국 그룹'도 우리 정부 주도로 12일 출범했다.
그동안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과 미국이 한국에 SOS를 요청하고 배우려는 사례들은 많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한국의 리더십은 개발도상국 관계에서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6일 G20 화상 특별회의를 통해 개도국 감염병 대응 역량강화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개발협력 대표기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코이카는 우리의 감염병 대응모델을 적극 사업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정보 허브도 오픈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경험과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국내외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웹사이트이다.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선진국도 힘든 상황이지만 개발도상국은 보건 인프라와 이를 지탱할 경제력이 열악하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많은 개발도상국이 코로나 대응 경험과 지식을 빠르게 확보하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인데, 개발도상국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코이카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코이카를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보건, 감염병 분야의 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지원이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크게 기여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물고기 잡는 방법 가르쳐줘야 = 그동안 코이카는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왔다.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인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감염병에 대해 단발성 대응보다는 감염병 역학 전문가를 양성하고 병원과 의료장비를 지원하는 등 유비무환의 대응태세를 갖추도록 지원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코이카는 우즈베키스탄의 감염병 예방과 대응역량 강화를 위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역학조사, 예방, 진단, 치료 및 수술 프로그램 지원 등 전염성 질병관리 역량강화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900만달러를 지원해 우즈베키스탄 감염병 대응과 국제공조체계 구축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중장기 역학전문가 교육 과정을 개설해 진행했고, 주요 감염병 병원체를 진단할 수 있는 시설과 첨단 진단장비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진단-역학조사-치료-수술 등 유기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했으며 의료 역량을 확보한 전문인력을 양성했다. 또한 미생물 진단과 분석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신속한 환자진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코이카 의료시스템 지원 효과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났다. 당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확진자가 1만여명이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5월 13일 현재 2519명(사망 10) 수준으로 관리 되고 있다. 5월 13일 현재 스페인 26만9520명, 러시아 23만2243명, 영국 22만6463명, 이탈리아 22만1216명, 독일 17만3171명, 프랑스 14만227명 확진자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이다.
이런 지원과 성과에 대해 우즈베키스탄 보건부는 코이카에 감사서한을 전달하며 한국정부 지원으로 코로나19에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우즈베키스탄 위생역학웰빙본부도 코이카 지원을 통해 역량 있는 역학조사관이 한국의 선진의료체계를 배워 전문성을 확보해 코로나19 대응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실시간 유전자증폭검사, 미생물분석장비 등 기기 지원과 그동안 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진단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고려대 의료원 윤승주 교수가 4월 26일 우즈베키스탄 정부 요청으로 코로나19 대응을 돕기 위해 현지에 파견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특별 항공편을 통해 우리 교민 194명의 귀국을 도왔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오가는 민간항공편은 중단됐지만 특별기를 통해 귀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한국정부가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제공하는 진단키트 2만회분이 실렸다.
코이카 특별지원 프로그램은 캄보디아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코이카는 캄보디아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손잡고 현장역학조사관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졸업한 69명의 역학조사관이 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해 현지 감염병 확산 방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검역현장에서 코로나19 신규 감염에 대한 빠르고 공격적인 접촉자 추적 업무를 수행했다. 감염사례 발굴, 접촉자 감염 여부 검사, 접촉자 격리기간인 14일 동안 추척, 1차 접촉자 격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그동안 접촉자 2000명 이상을 추적했고 27건의 감염사례를 발굴해냈다.
이밖에도 감염병 예방교육 캠페인, 바이러스 표본 수집, 주요 가이드라인 개발, 최전선 의료진 교육 등 코로나19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졸업 후 캄보디아 칸달주 지역보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스나에 디렁씨는 현재 코로나19 피해 지역에서 환자 의심사례와 접촉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신속대응팀 요원들에제 접촉자 추적 조사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스나에 디렁씨는 "칸달주 지역보건국과 지역사회의 많은 기대와 적극적 협조를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며 "코이카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지역에서 역학조사관이 더 많이 양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코이카가 2017년부터 미국국제개발처(USAID),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협력해 캄보디아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로드맵 수립 및 3대 행동계획 이행지원 사업을 진행한 결과이다. 현장역학조사관 양성은 이 사업 중 하나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 관리역량을 보유한 미국질병통제센터와 손잡고 전문성을 활용해 사업 효과성을 높인 것이 글로벌 보건협력의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코이카 사업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코이카는 후속사업으로 올해부터 2025년까지 850만달러를 지원한다. 역학조사관을 캄보디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긴급 상황실 운영을 통해 신속한 감염병 대응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코이카의 지원 등으로 캄보디아는 5월 13일 현재 확진자 122명, 완치자 121명, 사망자 0명으로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