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백신전략, 코로나에 주효할까
NYT "먹는 소아마비 백신 한시적 효과 시험중"
전 세계 의학연구자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임시방편으로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을 연구중이다. 폴리오 바이러스는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균이다. 60여년 전 소련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로 만든 폴리오 백신으로 예방접종을 할 경우 최소 한 달 정도는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면역력을 갖게 된다는 '긍정적인 부작용'을 발견한 바 있다.
그같은 면역력이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폴리오 백신이 코로나19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니다. 하지만 진짜 코로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팬데믹 중대 국면에 대처하는 방어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6일 먹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개발 비사를 실었다. NYT에 따르면 1959년 소련 미하일 추마코프 박사와 마리나 보로실로바 박사 부부는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곁들인 설탕조각을 자녀들 입에 넣어줬다. 아이들에겐 달콤한 간식이었지만, 저명한 의사였던 부모에겐 수많은 목숨이 달린 중요한 실험이었다.
===당시 나이 7살이었던 페뜨르 추마코프는 "나를 포함한 형제들은 설탕조각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고 회상했다. 현재 러시아 분자생물학자로 일하는 그는 "소아마비를 막기 위한 초기 백신이었다"며 "엄마 손에 들린 설탕 조각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설탕 간식으로 포장된 백신을 먹고 자란 형제들은 모두 저명한 바이러스학자들로 성장했다.
엄마 보로실로바 박사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폴리오 백신이 예상치 않은 긍정적 부작용을 가졌음을 알게 됐다. 백신을 먹은 사람들은 다른 바이러스 질병에 한달 이상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매년 가을 자녀들에게 폴리오 백신을 먹였다. 독감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60여년 전 발견된 그같은 2차 효과가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현재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기존 백신의 용도를 변경해 다른 감염병에 쓰자는 아이디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활용한 백신이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고 있다. 살아 있는 바이러스 백신을 입으로 투여하는 오랜 연구 전통을 가진 러시아가 특히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NYT는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미친 과학자들'이라는 조롱을 받지만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고 전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반응이 엇갈린다. 설사를 유발하는 로타바이러스 백신을 공동 개발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학 교수인 폴 A. 오핏은 "특정 면역을 유도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게 더 낫다"며 "용도를 바꾼 백신은 맞춤형 백신보다 효과가 매우 짧고 불완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릴랜드대 의과대 인간바이러스학연구소 소장인 로버트 갤로 박사는 코로나19에 대한 폴리오 백신 시험을 적극 옹호한다. 그는 "용도 변경 백신은 면역학에서 가장 핫한 영역 중 하나"라며 "독성이 약화된 폴리오바이러스의 면역 제공 기간이 약 한달 정도밖에 안된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생사의 중대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그동안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을 맞았다. 이제 소아마비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예외 상황에서 폴리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더욱 위험한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예방접종을 맞은 270만명 중 1명 꼴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같은 이유 때문에 주요 공공보건 기구들은 '일단 한 지역에서 자연적인 소아마비가 사라졌다면, 입을 통해 투입하는 경구용 백신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년 전 미국이 그랬다.
이달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러지·감염병 연구소'(NIAID)는 갤로 박사 연구소와 클리블랜드 클리닉, 버팔로대, 로즈웰 파크 종합 암센터가 함께 진행하는 연구를 보류시켰다. 이들은 보건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살아 있는 폴리오 백신이 코로나19에 효과적인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NIAID는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상수도로 스며들어 다른 이들을 감염시킬 가능성 등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앞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폴리오 백신 실험은 러시아에서 한창 진행중이다. 중동의 이란과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도 곧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에 특화된 백신은 면역체계를 훈련시켜 해당 바이러스만 타깃으로 삼는다. 현재 전 세계에서 125종 이상의 백신 후보들이 개발되고 있다. 반면 용도를 변경한 백신은 살아 있지만 독성이 약화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활용해 인간의 면역체계를 자극, 병원균과 싸우도록 한다.
원래 첫 번째 폴리오 백신은 미국인 조너스 소크 박사가 개발했다. 그는 비활성화된 바이러스를 사용했다. 즉 죽은 바이러스의 소량을 주사기로 인체에 주입했다. 하지만 주사 요법은 위생상태가 관건이었다. 때문에 당시 가난한 국가들의 입장에선 소아마비 면역 확산 캠페인에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주사식이 아닌 경구식 백신이 절실했다. 1955년 미국 세균학자 앨버트 세이빈이 살아 있지만 독성이 약화된 폴리오바이러스를 활용해 백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는 입을 통해 삼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미 소크 백신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또 미국 정부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시험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세이빈 박사는 3가지 종류의 바이러스를 소련의 부부 학자에게 줬다. 미하일 추마코프 박사와 보로실로바 박사였다. 추마코프 박사는 자신을 대상으로 백신을 실험했다. 하지만 소아마비는 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해야 했다. 그와 보로실로바 박사는 3명의 아들은 물론 여러 명의 조카들을 상대로 시험했다.
자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거쳐 추마코프 박사는 소련의 고위 당국자 아나스타스 미코얀을 설득해 광범위한 시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결국 경구용 폴리오 백신을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서 보급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1961년이 돼서야 경구용 폴리오 백신을 도입했다. 소련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이후였다.
아들 페뜨르 추마코프 박사는 NYT 인터뷰에서 "누군가는 먼저 나서야 했다. 자식을 실험대상으로 했다는 데에 화나지 않았다"며 "그런 아버지를 둔 게 너무 좋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 자식들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식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었지만 어머니가 더 열정적으로 나섰다"며 "어머니는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아이들도 십여개의 호흡기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약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전혀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보로실로바 박사는 자녀들이 폴리오에 대해 면역력을 갖게 된 이후 그같은 바이러스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1968~1975년 32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살아 있는 폴리오 백신을 먹어 면역이 생긴 사람들은 독감 치명률이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인간의 면역체계를 자극하면서 광범위한 바이러스성 질병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소련에서 명성을 얻었다.
보로실로바 박사와 추마코프 박사의 연구는 자녀의 건강은 물론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줬다. 자녀들 모두 바이러스학자가 된 것은 물론,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연구자가 됐다.
페뜨르 추마코프 박사는 오늘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엥겔하르트 분자생물학 연구소 수석 과학자이자 암을 바이러스로 치료하는 클리블랜드의 한 회사 공동창업자이다. 그는 악성종양과 싸우는 25개의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그 모든 바이러스를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연구했다.
그는 현재 폴리오 백신이 코로나19에 면역력을 제공하는지 실험하고 있다.
분자생물학자인 일리아 추마코프 박사는 프랑스에서 인간 게놈의 유전자 분자 배열 순서를 밝히는 작업에 참여했다.
알렉세이 추마코프는 부모가 형들을 대상으로 실험했을 때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는 미국 LA의 시더스-시나이 병원에서 암연구자로 일하다 러시아로 넘어왔다. E형 간염에 대한 백신을 개발했다. 물론 자신을 첫 번째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에게 실험하는 건 가족의 오래 된 전통"이라며 "건축공학자라면 자신이 만든 다리에 중대형 적재물이 처음 지나갈 때 그 아래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콘스탄틴 추마코프 박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백신연구평가국 부국장이다. 여기서 장차 개발될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하게 된다. 그는 갤로 박사 등과 함께 지난 12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기존 백신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을까'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콘스탄틴 추마코프 박사는 NYT 인터뷰에서 "1959년 다섯살이었는데, 설탕조각을 먹은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수많은 아이들을 소아마비에서 구해내는 데 크게 기여한 부모님의 실험은 옳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