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과거의 표'와 '현재의 표'

2020-07-07 11:29:13 게재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단독 국회'와 '단독 추경안 처리'는 '국민의 명령'이다. 근거는 절대 의석이다. 국민들이 176석을 준 것은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이고 그래서 국회가 공전돼선 안된다는 얘기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절대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 능력보다는 외부 효과 덕이다. 막말, 인재영입 실패, 리더십 부재 등 미래통합당의 실투와 문재인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호평 덕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스템 공천과 인재 영입은 '승리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된' 종속변수다. 시스템 공천은 조용했지만 '물갈이' 이벤트를 상쇄시켰고 인재 영입 인물들은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내세우는 절대의석의 힘은 고공행진을 보여준 대통령 지지도와 미래통합당의 지지부진이 '정상화'되면서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4.15 총선이후 절대 의석의 효용성을 보여주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민들의 인내의 시간 역시 그리 긴 편은 아니다.

미래통합당의 리더십 문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슬아슬하다. 총선 직후 고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이다. 대선 지지율 41.1%를 향해 가는 모습이다.

민주당이 국민들의 '표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정책을 추진하고 국회를 운영하는 것은 정당하다. 관건은 표심의 향배다. 176석은 과거의 표심이다. 현재의 표심은 다른 곳에 와 있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가 중학교 입학에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시험에까지 활용하겠다고 하면 어불성설이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의석을 내놓을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176석을 가진 민주당에 우선 필요한 것은 달라지는 민심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이해찬 대표는 총선 직후인 4월 17일에 당선인들에게 친전을 통해 "항상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152석을 얻었던 열린우리당 기억을 되짚으며 "우리는 승리에 취했고 과반 의석을 과신해 겸손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겸손은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머리를 숙였을 때 나타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다. 스스로 '겸손해야지'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또다른 교만이다.

민주당이 소수야당일 때 다수여당에 저항했던 행보들에 대한 반성 없이 절대과반의 칼을 소수야당에 휘두르는 것은 오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총선이 끝난 지 석 달 가까이 돼 간다. 21대 지역구 득표율이 민주당 49.9%(1434만5425표)대 미래통합당 41.5%(1191만5277표)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당투표인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민주당(더불어시민당)을 앞섰다.

지지율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민심'을 앞세워 밀어붙이면 내려갈 땐 같은 이유로 힘 빠지게 된다.

지난달 15일부터 시작한 '여당 단독국회'에서 민주당은 속도전을 보여줬다. 명분은 '국민의 명령'이었다. 정치는 모두가 속도를 말할 때 방향을 앞세우는 일이다. 민주당의 '국민'에 야당 지지자까지 포함돼 있다면 '속도'를 강조하기에 앞서 목표점을 설득해야 한다. 너무 빠르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동거리가 길다. 미래통합당이 한달여만에 국회 안으로 들어온다. 민주당이 달라질 수 있는 변곡점이면서 기회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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