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제안에 귀 기울이면 '다다익선'
광진구 '아이디어뱅크'로 행정빈틈 없애고 효율성↑
"김OO씨. 전맹(全盲)에서 저시력 사이. 음향신호기 대신 방범용 단추를 누르기도 한다. 리모컨이 작동되지 않는 지역이 상당수다."
"이OO씨. 빛과 사물 구분 가능. 파란불 점등시간을 알 수 없어 불편하다. 차량진입을 막기 위한 볼라드로 인한 위험도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시민정치론'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이같은 의견을 듣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시설 개선방안을 구상했다. 횡단보도 음향신호기에 '파란불이 켜졌습니다'나 '다음 신호를 기다리세요'라는 음성안내에 더해 신호가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안내하자는 의견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는 "안전한 보행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고 경찰청도 관련 심의위원회에 안건을 발표하면 위원들이 규격서를 바꿀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광진구가 주민들 제안으로 정책 실효성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권익위원회와 함께 대학과 협업, 청년들 시각에서 지역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건대 학생들이 1학기동안 발품을 팔고 머리를 맞댄 활동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시설 개선과 함께 택시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상의 승차대 운영, 반려동물 관련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사전교육 의무화, 버려진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한 작은 가게 등 제안이 나왔다.
구는 학생들 의견을 각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정책화 과정에서 연구를 한 학생들 결재를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광진구 관계자는 "광진구뿐 아니라 서울시를 비롯한 대도시 행정 상당부문을 망라하는 주제들에 대해 방향이 보이는 제안을 해줬다"고 평가했다.
청년들이 연구과제로 지역문제를 택해 구는 물론 관련 시민단체와 정부 부처 관계자들 의견까지 들어 정책화 가능성을 모색했다면 주민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행정에서 혹여 발생할 수 있는 빈틈을 메운다. 민선 7기 들어 주민과 직원 제안을 듣는 '아이디어뱅크'가 대표적이다. 김선갑 구청장 1호 공약사업으로 각 부서에서 실제 사업과 연계하는 건 물론 분기별로 실현 가능성과 창의성을 따져 우수 아이디어를 시상하고 있다. 산책로 주변에 반려동물 배변봉투 설치, 라돈 측정기 1000원에 대여 등 그간 주민과 공무원들이 내놓은 의견 가운데 정책화된 사례가 여럿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이달만 해도 구 누리집에는 '코로나 이후시대를 대비한 비대면 임명장 수여'나 '감염 취약계층을 위한 차량 내 안전방역' 등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광진구는 주민들이 아이디어뱅크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시상식을 정례화하는 한편 접수창구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지혜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모아지면 더 놓은 의견이 나온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단순 구상에 불과하거나 이미 시행 중인 정책도 있지만 공무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나 틈새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며 "주민 제안이 지역 성장동력이 되고 주민들에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아낌없는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