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포커스 - 입법부로부터 '무시' 당하는 국민청원
'일하는 국회' 한다더니 청원심사 한 번도 안 해
5건, 청원심사기간 90일 넘겨 연장
10만명 동의 얻은 청원도 외면
기재위, 아예 청원소위 구성 안돼
입법조사처 "충실한 심사 이뤄져야"
21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를 천명하고 나섰지만 정작 국민들의 목소리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의원 소개나 전자청원인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내 놓은 입법과제에 대해 단 한 차례의 심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시작한 지난 5월 30일 이후 들어온 청원은 모두 14건이었다. 의원소개로 청원이 이뤄진 게 9건, 30일 이내에 국민 10만명 이상이 동의해 들어온 국민동의청원이 5건이었다.
문제는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120일 가까이 돼 가고 있지만 단 한 차례의 청원 소위도 열리지 않았고 따라서 청원 심사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4건의 청원 중 상임위에 상정된 것은 단 한 건에 그쳤다. 정무위는 지난 9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소개로 함석인씨가 제출한 '군 휴가 중 폭행사건 관련 보훈혜택 부여에 관한 청원'을 전체회의에 상정한 후 특별한 토론없이 청원소위에 넘겼다.
17개 상임위 중 기재위는 아예 청원소위를 만들지도 않았다. 기재위에는 '개정 종합부동산세법 폐지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있지만 심사할 주체마저 없는 셈이다.
국회법에 규정한 심사 기간 '90일'을 넘긴 청원이 5건에 달하기도 했다. 7월에 들어온 5건이 모두 청원 심사기한을 넘어섰다. 7월 6일에 올라온 첫 청원인 '대학 강제폐교 정책의 수정 및 후속처리에 관한 청원'(한병도 의원 소개, 원덕호씨 등 305인 제기)은 110일이나 지났지만 상임위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8월에 들어온 5건 역시 외면받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10만 명만 동의를 얻으면 상임위에 직행한다고 홍보된 국민동의청원(5건)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회법에서는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며 '다만, 특별한 사유로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였을 때에는 위원장은 의장에게 중간보고를 하고 60일의 범위에서 한 차례만 심사기간의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사무처는 7월에 올라온 청원과 8월에 제기된 인문사회 분야의 안정적인 연구교육 기반 조성에 관한 청원까지 모두 6건에 대해 심사기간 연장이 이뤄졌다고 했다. 단서 조항인 '특별한 사유'가 남용된 사례로 지목받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국회가 청원을 무력화시키면서 외면하는 데 활용했던 방식으로 비판받아왔다. 여기에 국회법은 '장기간 심사를 요하는 청원'에 대해서는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심사기간의 추가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사실상 심사 기한을 무한정 늘릴 수 있게 만들어 놨다.
이와 관련 민주당 민형배 의원 등은 지난 9월에 청원심사 기간을 줄이고 추가 연장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유로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했을 때에는 위원장은 의장에게 중간보고를 하고 30일의 범위에서 한 차례만 심사기간의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은 담았다. 심사기간을 최대 90일로 제한한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청원 활성화를 위해서는 충실하고 적극적인 심사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조처는 지난 4월 '국민동의청원제도의 현황과 의의' 보고서를 통해 "국민동의청원제도가 의미 있는 국민 참여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회의 충실한 심의와 입법에 대한 반영이 필요하다"며 "공동체의 현안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 다수의 관심과 요구가 국회의 다각적 논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회의 적극적인 청원 심사를 통해 비로소 국민동의청원제도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파편적인 의견표출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참여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