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선도지구'를 찾아서│② 서울 동작·관악지구 대도시형 교육 협력 모형

"다니는 학교는 달라도 배움의 기회는 공평하게"

2020-10-23 11:04:27 게재

교과 특성화학교 연합 '공유캠퍼스' 주목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한다. 고교학점제란 대학처럼 학생들이 원하고 필요한 과목을 정해진 학점만큼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마이스터고에서 시범운영중이다.

하지만 전면 도입까지 벽이 높다.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교육환경을 새로 구축해야한다. 사회적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학생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개별 학교가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부는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고교학점제 선도지구'를 운영중이다. 학교와 민간기업, 지역사회가 융합전략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성공으로 이끄는 지역을 찾았다. <편집자 주>


이진경(고1) 학생은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설계하고 있다. 최근 2, 3학년 때 배울 선택 과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컸다. 2학년 때 이수할 <정보> 과목을 심화해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등을 배우는 <정보과학> 과목을 신청했다. 하지만, 선택한 학생 수가 적어 결국 폐강됐다.

지난 학기 영등포고가 주관한 '메이커 교육'에서 공유캠퍼스 소속 학교 학생들은 아두이노와 앱인벤터 등을 이용한 'AI 고카트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선택 과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단위 학교에서 이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학교현장에서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 선도지구 지원사업'에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과목 선택 학생 수가 적은 한계를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과 대학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한 '학교 밖 교육과정'으로 극복하고 있다. 서울 동작·관악지구는 교육지원청을 중심으로 지역 학교뿐 아니라 의료기관, 대학 등 다양한 지역 기관이 협력하는 '대도시형 교육 협력 모형'을 준비하고 있다.

'다니는 학교는 달라도 배움의 기회는 공평하게'라는 비전이 선도지구 지원 사업의 취지를 잘 보여준다는 게 인근 학교들의 반응이다.

◆"SW-사회-과학-제2외국어로 뭉쳤다" = 동작·관악지구 내 4개 교과 특성화 학교들은 '공유캠퍼스'를 구성했다. 학교마다 강점이 있는 교과 영역을 분담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구축한 것. 공동교육과정 수업은 SW와 사회, 과학, 제2외국어로 마련했다. 교과 특성화 학교로 지정된 당곡고 수도여고 영등포고 신림고가 주인공이다.

내년부터 시작될 개설 과목으로, 영등포고는 '융합과학탐구'를, 당곡고는 '정보통신', 수도여고는 '세계문화와 미래사회', 신림고는 '스페인어Ⅰ' 과목을 맡기로 했다. 이공계, 소프트웨어 쪽 진로를 생각하거나 사회 교과, 외국어 교과 과목들을 심화해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선호할 만한 과목들이다.

이 과목들은 소수 인원이 선택할 경우 어려움이 따른다. 소수인원을 위한 과목을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개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과목 개설이 공지된 뒤 4개 학교에서 신청을 받은 결과 과목당 10~20명 안팎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학교별로 보면 2~5명이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공유캠퍼스에서 쉽게 해결됐다.

공유캠퍼스 공동체험학습.


◆일반고-특성화고,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 운영 = 교과 특성화 학교 연합형 외에도 동작·관악지구 내 일반고와 특성화고가 연계한 진로직업교육 모델도 구축했다. 일반고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 교육 수요를 관련 영역이 특화된 특성화고가 지원하는 것이다. 미림여자정보과학고는 프로그래밍과 컴퓨터그래픽 디자인, 광신방송예술고는 단편영화 제작과 뮤지컬, 서울관광고는 바리스타와 승무원 준비 과정, 영락의료과학고는 의료 IT와 기본 간호 체험하기, 서울공고는 컴퓨터활용생산 기초와 PLC를 활용한 자동화시스템 기초 수업을 진행한다.

지역 내 대학인 서울대 중앙대와 연계한 진로·진학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서울대 평생교육원과 중앙대 LINC+ 사업단이 참여한다. '국제경제 브리핑, 세계화와 한국' '디자인 씽킹을 활용한 인공지능의 이해' '청소년을 위한 심리학 교실' '실험으로 이해하는 생명공학 교실' '코딩없이 시작하는 AI 데이터 분석' '미래사회와 자율주행' '나도 보안사고 수사 전문가' 등 학생들의 관심이 큰 미래형 교육 프로그램들이다.

단위 학교의 힘만으로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넓히고, 사회적 요구가 커진 정보나 기술, 메이커 교육 등을 제공하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역 내 학교들과 대학 등 교육기관의 협력형으로 운영되는 선도지구 지원 사업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당곡고 심중섭 교장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는 소수의 학생들이 선택할 경우 어려움이 있지만, 모여서 하면 수업을 개설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게 학생들의 진로에 따른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며 "4개 학교가 각각 서로 다른 교과영역을 특성화했기에 자연 인문 융합 등 학생들의 관심 분야를 고려할 때 최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었다"고 설명했다.
 

공유캠퍼스 수업


◆학점제, '마을' 안 학생들과 함께 성장 =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우려는 학교 간 여건 차이다. 소도시 읍면 지역 학교는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교사 수도, 학생 수도 부족하다는 우려가 가장 컸다.

하지만, 대도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고교학점제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는 현재도 수능의 영향력이 큰 대입 제도 장벽과 학교 간 인식 차 등으로 '선택의 폭'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학교 규모를 키우는 '공유캠퍼스' 개념은 소속 학교에 상관없이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심 교장은 "고교학점제는 소속 학교뿐 아니라 학교 밖 교육을 통해서도 학점을 인정받아 일정 학점에 도달하면 졸업할 수 있는 개념이다. 공유캠퍼스는 그런 면에서의 여러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며 "별도 예산이 지원되는 교과 특성화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자칫 특정 학교에만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유캠퍼스가 소속 학교에 상관없이 '마을' 안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심 교장은 "소프트웨어 중점고로 '과학과제연구' 과목을 개설해 몇 년 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자연계열로 진학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다양한 정규 수업과 학교 활동을 통해 스스로 체험하고, 고민하고, 그 안에서 좌절도 하면서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도지구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교사들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면 지역 여건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 모델이 나와야 한다. 정부가 최근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맞춘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의 기본 방향을 정해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이를 고려해 평가할 수 있는 대입제도라는 두 축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자칫 정책을 위한 정책,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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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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