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입법의 역설
"법률안 간단할수록 가결확률 높아"
용어조정법안 처리 40.5%
다양한 정책제안 법안 적어
"의원 입법평가 대수술"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법을 새롭게 만드는 제정법이나 다양한 정책을 반영한 법안은 대부분 폐기되는 반면 문구 조정 등 간단한 변경을 포함한 법안들의 가결률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
27일 한국정치학회는 국회 사무처에 제출한 '제20대 국회 의원입법 동향 및 의원입법의 질적 향상 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한 연구활동은 지난 4월부터 넉 달간 진행됐으며 김범수 연세대 연구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이름을 올렸고 김은경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한창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강사, 장우영 대구카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20대 국회의원 발의 순위 상위 10명 중 1명, 중위 10명 중 1명, 하위 10명 중 1명 등 총 3명을 선정해 이들이 발의한 모든 법안을 분석했다. 이 3명의 발의 법안 가결률 등 지표들은 전체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가결된 법안의 핵심 특징은 '변경조항이 적다'는 것이었다. 법을 새롭게 제정해 변경 사항이 가장 많은 제정법안의 처리율은 20%로 가장 낮았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법안 처리율도 30.4%에 그쳤다. 반면 용어 조정 법안은 처리율이 40.5%였다. 일몰기한 연장법안의 처리율은 76.2%에 달했다.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간명한 내용, 짧은 내용을 개정하는 법안에 대한 가결 가능성이 많은 내용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법안에 대한 가결 가능성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안 처리 중 원안 그대로 통과되는 원안가결률 역시 간단한 내용일수록 높았다. 보고서는 "가결된 법안들은 다수가 일몰기한 조정 법안, 용어 수정법안 등 상대적으로 개정 내용이 한 가지 조항인 경우가 많았다"며 "내용이 간단한 법안일수록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량평가'를 고려한 의원들이 손쉬운 법안발의에 주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명 의원이 발의한 법안 468건 중 용어 수정 법안은 116건으로 24.8%를 차지했다. 일몰기한 연장법안이 21건으로 4.5%, 형벌 및 혜택 등 법적용 기준 조정 법안이 51건으로 10.9%, 지원대상을 조정하는 법안이 187건으로 40.0%였다. 용어수정, 일몰연장 등이 중복돼 들어간 법안은 24건으로 5.1%였다. 기존의 정책을 유지, 수정, 조정하는 법안이 468건 중 283건으로 60.5%인 셈이다. 반면 제정법안이 15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 다수 조항으로 구성된 법안이 54건으로 69건의 법안은 상대적으로 입법역량이 많이 드는 것들로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이 14.7%였다.
보고서는 "의원입법의 발의수를 국회의원의 입법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용하는 경우에 국회의원은 제정입법이나 전부개정입법과 같이 입법역량을 많이 투여하는 법안보다는 용어 수정 법안, 일몰기한 연장법안, 동일주제의 정책을 조항별로 분리하여 발의하는 법안에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연구진은 "국회의원에 대한 입법역량의 정량평가의 지표 중 하나로 원안가결과 수정가결, 그리고 대안반영폐기를 구분하고, 원안가결에는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대안반영폐기는 낮은 점수를 주는 것도 입법역량 평가를 왜곡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안반영폐기 법안을 가결법안으로 계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사례분석 결과, 발의안이 대안이 반영되는 수준에는 차이가 있었다"며 "구체적으로는 발의안이 대안에 온전히 반영된 경우, 발의안의 핵심 취지만이 대안에 반영된 경우, 발의안 중 일부만 대안에 반영된 경우, 발의안이 대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모 의원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청와대 소속 경호실을 폐지하고 청와대 경호실을 경찰청 소속으로 이관하는 취지였으나 청와대 경호실을 청와대에 존치하고, 명칭만 경호실에서 경호처로 변경하는 법안에 대안반영됐다고 했다.
연구진은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그룹 2명과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관그룹 3명을 통한 심층면접을 실시, 의원입법평가의 대수술 방안을 제시했다. "의원 개인의 법안발의에 대한 초점이 아닌 상임위원회 심사절차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의원발의 법안의 질적 수준 저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단순 문구조정 법안이나 분리법안, 중복 법안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원의 입법 평가 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결합하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