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백신 1차 접종대상자 파악 우왕좌왕
중앙방역대책본부 무리한 조사 요구
지자체 "기한촉박·인력부족" 하소연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전국 지자체에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위한 의료기관 등 종사자 현황조사를 무리하게 요구해 반발을 사고 있다.
지자체 등에 따르면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전국 지자체에 의료기관 노인의료복지시설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의 종사자 현황을 조사해 보고하도록 했다. 대상은 근무조건에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근무하는 모든 종사자다. 조사 대상이 광범위한 것도 문제지만 기한도 촉박한 요구다.
지자체들의 가장 큰 불만은 회신 기한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광역 시·도에 공문을 보낸 것은 지난 24일이고, 회신 요구 기한은 31일까지다. 크리스마스와 주말 등을 고려하면 고작 사흘 동안 전국 모든 의료기관의 종사자 현황을 조사토록 했다. 1차 백신접종 대상자군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뒤늦게 대상자 조사에 나서면서 지자체에 무리한 요구를 한 셈이다. 이 같은 요구는 공문 시행 이틀 전인 22일 청와대의 질책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내용도 방대하고 복잡하다. 대상은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치과·한방병원 의원 치과·한의원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이고, 각각의 기관에 종사하는 의사 치과의사·한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간병인 의료기사 대민업무행정인력 비대민업무행정인력 등을 세분화해 조사토록 했다.
공문을 전달받은 대부분 시·도가 기한이 촉박해 조사에 무리가 있다고 항의했지만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를 무시했다. 시·도 담당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초지자체에 조사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조사를 위해서는 시·도에서 기초지자체에 다시 공문을 보내 조사토록 해야 한다. 또 이를 전달받은 시·군·구는 담당자 한두명이 지역별로 많게는 수천개에 달하는 기관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실제 서울의 한 자치구의 경우 대상 의료기관만 1300개가 넘는다. 서울시 전체 의료기관 종사자도 15만여명에 이른다. 이마저도 간병인 등을 제외한 숫자다.
이 같은 상황을 아는 시·도 담당자는 중앙방역대책본부에 기한 연장을 요구했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갖고 있는 기본 정보를 활용해 대략의 접종 대상자를 예측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심평원 등을 통해 확보한 의료기관이나 종사자 수에 근거해 대략적인 수요를 파악해 백신을 확보하고, 실제 접종 전까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황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 시·도 담당자는 "기한이 촉박해 현황조사에 무리가 있다고 하니 보고한 숫자만큼만 백신을 줄 거니 알아서 하라며 압박했다"며 "백신이 확보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한을 촉박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시·도 업무담당자는 "현황 조사를 위해서는 각 시·군·구 보건소가 나서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 대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현장 상황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시·도 담당자들은 백신 관련 논란이 한창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차 접종대상자 파악조차 하지 않은 중앙방역대책본부를 질책하기도 했다. 이 담당자는 "백신 1차 접종대상자 파악조차 안 돼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며 "뒤늦게 자료를 만들려고 하니 무리가 따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시·도는 31일까지 파악한 자료만 우선 보내고 내년 1월에 추가 현황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의 한 시·도 담당자는 "백신이 아직 들어온 것도 아니니 31일까지 취합이 안 된 곳은 추가로 자료를 파악하지 않겠느냐"며 "중앙방역대책본부도 불가피하게 기한을 연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