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동의청원 1년 | ② 10만명 동의 얻은 청원도 '찬밥신세'

단 한 번의 청원소위도 열지 않았다 … 18건 중 12건 심사 안해

2021-01-07 11:21:08 게재

국민동의청원 18건 모두 살펴보니

상정조차 안 된 채 폐기된 게 3건

21대도 11건 중 6건 상임위 상정 안해

30일만에 국민 10만명 동의를 얻어 제출된 국민동의청원을 국회는 '찬밥'처럼 취급했다. 상임위에 회부된 국민동의청원을 심사할 청원소위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상임위에도 상정되지 않은 채 폐기됐거나 잠자고 있는 청원이 절반을 넘었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동의청원이 도입된 지난해 1월 10일 이후 상임위에 회부된 18건 중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게 9건이었다. 상임위에 상정된 이후 단 한차례도 심사되지 않은 청원까지 합하면 12건이다. 국민동의청원이 '30일내 100명 찬성'과 '불수리 기준'을 통과해 '한달내 10만명' 동의를 얻어 상임위까지 도달할 수 있는 확률은 0.8%(지난해 12월8일기준 2121건 중 17건)지만 이를 통과한다해도 넘어야 할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정의당 의원들 앞 지나는 백혜련 소위원장 |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정의당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피켓을 들고 있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실 앞을 지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사위에 회부됐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지난해 5월 29일까지 임기였던 20대 국회에서는 국민동의청원 3건이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과 이를 반대한 청원이 각각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법사위와 관련 상임위인 운영위조차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를 거부했다. 중국인 영주권자 지방선거투표권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 역시 행안위에 상정되지 않은 채 의원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 처리됐다.

상임위에 상정만 해놓고 소위에서 논의를 하지 않은 국민동의청원도 적지 않다. 지난해 5월말부터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에 올리지도 않은 국민동의청원이 6건이었고 상임위에 상정돼 소위로 넘어갔는데도 논의하지 않은 청원이 3건이다. 관련 상임위에 회부한 청원 12개 중 공식 상정한 곳을 전혀 없고 1개 상임위만 의견을 회송했을 뿐이었다.


◆ 다른 법안과 같이 법안소위서 논의 = 심사가 진행된 6건을 보면 단 한 차례의 청원소위를 열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두 법안소위에서 논의됐다.

지난해 2월에 상임위에 넘겨진 국민동의청원 1호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요구하는 청원'은 법안소위에 직접 회부되자마자 본회의에 올리지 않고 취지만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한달후인 3월에 들어온 'n번방 사이버 성범죄 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은 이틀간 법안소위를 거쳤지만 계류된 채 남겨졌다가 폐기됐다. 부양을 해태한 직계 존·비속을 상속결격사유에 포함시키는 등 민법 개정을 요구한 청원 역시 법안소위에서 두 번 논의한 후 폐기됐다. '텔레그램 미성년 성범죄 처벌 강화와 신상공개' 청원은 법안소위로 넘어간 날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회적 참사법 개정' 청원은 지난해 12월에 한번의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대안반영폐기로 의결됐다.

◆별도 규칙 없는 전자 청원 = 국회는 10만명 이상이 동의한 국민동의청원에 대해서도 과거 의원소개 청원에 대한 외면을 이어갔다. 90일 이내에 심사를 종결해야 한다는 법률도 '단서'조항을 근거로 무력화시켰다. 청원자가 심사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거나 청원심사소위를 여는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국민동의청원의 특수성도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에서는 2019년 4월에 '국회는 청원의 제출·접수·관리 등 청원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전자시스템(전자청원시스템)을 구축·운영해야 한다'며 '전자청원시스템의 구축·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규칙으로 정'하도록 했지만 아직도 별도의 규칙을 만들지 않았다.

청원법에서는 '청원을 수리한 기관은 성실하고 공정하게 청원을 심사·처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참여연대는 "국회의 역할은 헌법에 규정된 청원권을 보장하고 국민이 낸 전자청원을 국회법에 따라 충실히 심사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국회는 제출된 입법청원에 대해 제대로 된 심사는 커녕 심사기간 연장 등 국회법에 따른 절차조차 무시한 채 입맛대로 처리해왔다"고 지적했다.

["국민동의청원 1년"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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