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원, '제2의 n번방 청원' 되나

2021-01-07 11:21:08 게재

청원 취지와 크게 벗어나

처벌수위·대상 등 후퇴

산업재해로 발생하는 사망 피해자를 차단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이 청원 취지와 내용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2의 텔레그램 n번방 청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청원은 세 번이나 '30일안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20대 국회 마지막 해인 지난해 2월, 3월, 4월에 각각 상임위에 올랐다.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매달 제기됐고 10만명의 동의를 얻게 된 것은 국회의 청원심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로 읽힌다.

2월 11일에 상임위에 회부된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요구하는 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 포르노와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양형 기준을 높여달라는 요구였다. 법사위 법안소위는 청원 내용의 일부만 의원들이 내놓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과 묶어 위원장 대안으로 반영한 후 폐기했다. 곧바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청원 내용이 축소돼 n번방 방지법이 졸속 처리됐다'는 내용의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성명이 나왔다. 비판여론이 거세졌다. 청와대국민청원 등에서 비판이 빗발치고 법안 재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3월 25일에 'n번방 사이버 성범죄 처벌법 제정'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사위로 올라갔다. 당시 법사위 전문위원은 "청원 내용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은 심각한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처벌법 제정이 필요하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거나 이를 유료로 구매하여 보는 행위에 대해서 엄하게 처벌하고 사이버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SNS나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참여하여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에 참여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처벌하고 성폭행 사건의 처벌을 강화하고 입법 후 바로 시행을 요망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계류처리된 후 임기말폐기됐다.

4월 16일에 다시 올라왔다. '텔레그램을 통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처벌 강화 및 신상공개에 관한 청원'자는 "텔레그램을 통한 미성년자 특히 아동에 대한 성범죄가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청원하게 됐다"며 "텔레그램을 통한 미성년자 성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여성가족위에서는 이 청원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병합심사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라는 용어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변경했다. 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시 처벌 수위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의 징역'으로 강화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전시·상영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서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배포·제공하는 경우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명시했다.

21대 들어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논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이 '누더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원인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홀로 일하다 사망한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용균이 엄마, 김미숙"이라며 △노동자, 시민의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 처벌 △다단계 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의 중대재해도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원청 처벌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에 대한 다중이용시설, 제조물의 사용과정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의 실질적인 책임자 처벌 △불법 인허가, 관리감독 소홀로 인한 중대재해에 대한 공무원 및 공무원 책임자를 처벌 △고의적이거나, 반복해서 법을 위반하는 경우 등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 등을 주문했다. 하지만 5인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경영인(대표이사, 오너) 등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진데다 처벌수위도 '하한'을 없애는 등 크게 완화된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두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실심사이면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동의청원 1년"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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