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의 미래도서관

도심 곳곳 유랑하며 사유와 공유 경계를 허물다

2021-07-15 13:36:40 게재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만나는 건축학도가 꿈꾸는 도서관 … 한걸음만 옮기면 어디에나 서가

10일 방문한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2021 정림학생건축상을 수상한 '밤의 도서관' 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는 도서관 어느 한 곳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지하부터 3층까지 도서관의 모든 공간을 활용해 진행되고 있었다. 밤의 도서관 수상작 15개 작품의 주제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 전시 작품을 배치한 것.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리는 '밤의 도서관' 전시. 사진 이의종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고 각 수상작들이 설계한 도서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용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둘러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시로 눈길을 돌렸다.

2021 정림학생건축상 수상작 '유령 도서관'. 사진 정림학생건축상 제공


각 수상작들은 직접 만든 책으로 출품됐다. 전시에는 각 작품과 어울리는 도서 컬렉션도 함께 배치돼 있었다. '밤의 도서관' 전시를 주제로 한 '도서관을 지어올리는 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느티나무도서관 사서들의 컬렉션도 함께 했다.

2021 정림학생건축상 수상작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사진 정림학생건축상 제공


◆도심에서 만나는 '공유 공간' = 건축학도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만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도서관들을 설계했다. 2층 담쟁이 넝쿨이 둘러싸고 있는 창가에는 미래를 배경으로 도심을 달리는 이동도서관인 '유령 도서관'(김정은 박정원)이 전시돼 있었다.

2021 정림학생건축상 수상작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사진 정림학생건축상 제공


이 팀은 많은 공공도서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도시의 외곽에 위치했다는 데 주목했다. 이에 자율주행이 일반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도심 곳곳을 달리는 자율주행 이동도서관을 설계했다.

이동도서관들은 도심 곳곳을 이동하며 필요한 곳에 머물기에 대지에 대한 임대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이동도서관들은 도시를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으로 기능한다.

또 이동도서관들은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조립식으로 여러 모듈들을 합해 만들어진다. 각 모듈들을 가볍게 뗐다 붙였다 하면서 필요에 따라 가변적인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

작품 설명에서 이 팀은 "도시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의자들을 통해 누구의 사유지도 아닌 공유 공간의 가능성을 보았다"면서 "집 앞, 골목, 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모빌리티들은 도시와 사람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유령 도서관'에 어울리는 책으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소프트 시티' '도시의 발견' 등을 함께 전시했다. 유령 도서관의 배경인 도시에 주목한 컬렉션이다.

◆지식활동을 공유하다 = 1층 잡지방에 전시돼 있는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정세미)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는 작품 중 하나다.

리빙 라이브러리의 주제 의식은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공유하는 공공시설이 아니며 지식활동을 공유하는 공공시설이 돼야 한다'는 것. 이에 맞춰 리빙 라이브러리는 서울 홍대 앞 동교로를 따라 분산된 3개의 거점형 도서관으로 주거와 결합된 형태로 구성돼 있다.

A 도서관은 골목길의 흐름을 따라 설계된 도서관이다. 핵심 공간을 빼면 모두 개방돼 있어 골목길을 걷던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meet and create').

B 도서관은 연립주택 단지 안에 들어선 도서관으로 주택들 사이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자료실 등 모든 도서관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주택인 만큼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 있어 합숙이 가능하다. A 도서관에서 만나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된 사람들은 B 도서관에서 머무르며 작업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료를 축적하며 경험하고 머무른다('archive, experience and stay').

C 도서관은 읽고 살아가는('read and live') 도서관이다. 책장 끝에 달린 문을 닫으면 그곳은 오로지 나를 위한 책장이다. 그러나 그 문을 열면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두의 서가가 되고 모두의 도서관이 된다. 사유와 공유의 경계를 고민한 끝에 그 둘을 아우르는 도서관이 탄생했다.

이 팀은 작품 설명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대립된 개념이 아니"라면서 "사유와 공유의 경계-도서관과 주거의 경계-를 조절할 권리를 사용자에게 돌려줄 때, 공유 공간은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 등에 점자 표기 '모두를 위한 곳' =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김상민 이호정)도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성영 사서는 "지금의 도서관은 산 속에 있는 등 찾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팀이 말하는 도서관은 찾아가기 쉬워야 하고 그곳에 가면 무엇이든 쓰고 싶어지는, 영감을 주는 곳"이라면서 "꼭 책을 읽으러 올 필요는 없으며 장애인 소수자 등 모두를 위한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하기 위해 이 팀이 설계한 도서관은 도심인 용산을 배경으로 지은 도서관이다. 누구나 찾기 쉽도록 상점 사이사이에 서가를 뒀다. 각 서가들은 시민들을 도서관으로 이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다가도,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도 밖으로 한걸음만 나오면 서가에서 책을 고를 수 있다.

또 이 도서관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도서관이 사실, 굉장히 배타적인 공간일 수 있다는 것.

작가들은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열린 도구지만 동시에 가장 배타적"이라면서 "장애인 문맹 혹은 유학생들에게 도서관은 어떤 존재인가?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들과 소통할 수는 없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제안으로 작가들은 책 등이 위로 보이게 꽂은 서가를 제안했다. 책 등에는 점자가 표기돼 있어 시각 장애인들은 책 등을 손으로 읽으며 자신이 원하는 책을 편리하게 고를 수 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이 작품과 어울리는 책들로 도서관에 대해 다룬 책들을 모았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세상 끝자락 도서관' '교도소 도서관' '도서관은 어떻게 우리 삶을 바꾸는가' '도서관을 훔친 아이' '슈퍼 라이브러리' 등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달 26일 수상한 각 팀들과 사서, 이용자 등이 함께 하는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31일에도 각 팀들이 함께 하는 만남의 자리가 열릴 예정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22주년을 맞은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운동을 펼친다. (느티나무도서관 홈페이지 www.neutinamu.org)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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