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추경심사, 입법부:행정부 대충돌 예고편
거세지는 여당-기재부 '예산전쟁' … 청와대는 '조율'보다 '관망'
기재부 '전국민재난지원금 제동'에 '기재부 개혁' 목소리 높아져
정당 주도 국정운영 강화, 선거 민감한 여당 입김 작용 가능성
재정건전성과 민생 사이 '균형' 절실 … "청와대 조율 필요"
여당과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국회 안에서 벌이는 충돌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보통 정부가 여당과 손잡고 야당의 삭감·증액 요구를 방어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여당과 정부의 갈등이 더 강하고 격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놓고 힘겨루기 중이다.
절대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민주당정부'라며 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내세운 여당 입장에서는 정부의 강한 제동에 다소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살림살이를 챙기려는 정부와 국민들의 목소리를 앞세우는 여당의 마찰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예산에 대한 입법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입법부의 저항으로도 읽힌다. 문제는 이러한 마찰이 앞으로 더 자주, 강도높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3일 여당 핵심관계자는 "총액을 늘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전국민재난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데에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점에 와 있다"면서 "하지만 기재부에서 여야가 모두 반대하는 신용카드 캐시백과 '선별 지급'이라는 이념적인 부분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의견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특히 여당과 기재부 사이의 간극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여당이 주장하는 아동수당, 전국민재난지원금 등 복지예산을 놓고 기재부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거대양당구도에서 선거는 여야간 치열한 경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고 재정건전성은 날로 악화되고 있어 정부와 여당간의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막아서는 기재부 = 기재부는 곳간지기다. '제한된 예산'을 '다양한 사업'에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지출할 데가 많아 수입에 맞춰 살림을 잘 꾸려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재정건전성이 국가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 곳간지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기재부는 '국가'가 맨 앞에서 악역을 맡는다는 자부심과 입법 포퓰리즘에 국가의 운명을 넘기지 않겠다는 사명감, 입법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존감 등이 뒤섞여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직'을 걸기도 했다. 저항의 강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입법부가 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정부의 반작용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놓는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비율이 높지 않다. 23일 현재 21대 들어 정부가 제출한 347개의 법안 중 170건이 처리됐으며 정부원안이 그대로 통과된 것은 35건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177건은 계류 중이다. 국회의원들이 제안한 법률로 지출을 규정한 의무지출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입법부가 표심 등을 이유로 정부의 재량지출까지 깊숙이 관여하려 한다는 게 기재부의 불만이다.
◆기재부에 대한 불만도 커져 = 헌법에서는 '정부'에 예산편성권을 줬지만 '청와대'가 아닌 '기재부'가 정부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선출직이 가는 길을 기재부 공무원이 막는 서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여당은 "대한민국이 기재부의 나라냐" "기재부에 너무 막강한 권한이 쏠려 있다"고 따지면서 차기 정부에서 정부조직법을 고치는 등 기재부를 개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당 대선후보들의 '관료주의 타파' 목소리가 크게 나오고 있다. 여당 인사들이 장관과 정책보좌관 등으로 나가면서 기재부의 독주에 대한 불만도 쌓여 있다. 막강한 권력을 분산시키고 기재부 출신이 장관으로 가는 '순혈주의'를 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여당 기재위 전문위원을 역임했던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기재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면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더 민감할 필요가 있고 현장상황에 예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입법부는 항상 민생과 접촉하고 있고 현장감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서 "재난지원금도 분류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국민에게 주는 게 맞고 주려면 빨리 줘야 한다"고 했다.
◆중요해지는 청와대의 조율능력 = 기재부와 여당의 예산전쟁에 청와대가 한발 빠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급대상과 관련해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행정부 콘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당정 마찰부분을 해소하지 않고 관망한다는 데에 비판적인 시각이 나온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정부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나온다"며 "청와대의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헌법 54조는 정부의 예산편성권과 국회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명시하고 있다. 또 57조에서는 국회가 정부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게 못 박아놨다.
국회 예산 심의 관련해 오랫동안 일해 왔던 한 인사는 익명을 요구하면서 "정부엔 예산편성권을 주고 국회엔 심의권을 주면서 서로 견제토록 하고 있다"면서 "예산편성 때는 정책의 영역이지만 국회로 예산안이나 추경안이 제출되면 정치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했다. "우선순위와 비중 등 국민들과 밀접한 부분을 결정하는 정치영역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며 "국회에서도 입법권, 예산심사권을 활용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