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대립 중 노조간부 사망 '업무상재해'

2021-08-04 12:52:20 게재

근로복지공단, 출퇴근 시간 확인 안 돼 거절 … 재판부 "업무 특수성으로 스트레스, 기존 질환 악화"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 측과 대립하던 가운데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4년전 세상을 떠난 서명식 코엑스 노조 위원장 이야기다. 서 위원장이 출퇴근 기록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됐지만 재판부는 서씨가 처한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판단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서 위원장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4년부터 노조 대표로 활동하던 서 위원장은 2017년 3월 주말, 교회에서 열린 운동 모임에 나갔다가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후송됐다가 사망했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고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서 위원장의 근무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일반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 등 업무시간이 정해져 있고, 야근 등을 할 경우 수당 책정을 위해 구체적 업무시간이 회사에 의해 정리된다. 하지만 노조 전임자의 경우 사측에서 근무시간을 정리하지 않는 근로시간 면제자다. 회사가 근태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출퇴근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로를 입증할 자료가 마땅치 않았다. 이에 유족들은 2019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출퇴근 시간을 특정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나 교통카드, 하이패스 등의 대중교통 사용실적이 쓰이는데 자료가 부족했다. 카풀이나 도보 출퇴근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가 제공한 컴퓨터 사용시간이 근무시간 산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회사는 서 위원장이 세상을 뜨자 업무용 컴퓨터를 교체해 이를 확인할 길이 막막했다.

결국 재판부는 서 위원장이 노조위원장이라는 점에 주목해 사측과의 관계를 살펴봤다.

애초 코엑스는 노사간 관계에 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회사가 갑작스레 구조조정을 개시했다. 자연스레 노사는 대립했다. 서 위원장은 물론 회사 직원들로서는 낯선 상황이었다.

노조가 반대하는데도 회사는 명예퇴직을 추진했다. 결국 연말에는 명예퇴직 11명, 대기발령 3명, 관계사 이동 21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해가 바뀌자 회사는 노조 사무실까지 줄이겠다고 나섰다. 실무교섭에서 타결 가능성은 없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망인이 수행한 업무가 노사관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것으로 정신적 긴장을 요했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팀장급 간부 14명이 망인의 개인적 욕심에서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부에서 망인을 노조위원장에서 탄핵하자는 연판장을 돌리는 움직임도 보였다. 회사가 노조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하자 노조 조합원은 물론 집행부도 서 위원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미 구조조정이 시작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회사 방침을 따르는 시늉을 하는 게 현실이다.

법원 감정의들은 이에 대해 "심신의 스트레스가 심근경색의 유발인자가 된다"며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에 사회적 지지의 부재 혹은 고립감, 직무스트레스를 포함한 만성 스트레스 등이 포함된다"고 재판부에 보고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는 통상 업무가 과다한 것으로 겪게 되는 스트레스와 달리 노조전임자의 업무 특수성에 따라 노사 갈등, 사내 정치나 인간 관계에서 비롯하는 스트레스가 망라돼 있다"며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는 기존 질환을 자연적으로 악화시켰다"고 판단했다.

서 위원장은 숨지기 10년전 비대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아 의료진이 무리한 운동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지속적 추적관찰을 위한 진료를 받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지만. 업무와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특성상 급성으로 심근경생이 발병하기 때문에 평소 추적관찰 및 관리를 했더라도 망인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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