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협’ 정부-의료계 ‘동상이몽’
대한의학회·KAMC 참여 조건 사실상 거부 … 전공의·의대생은 요지부동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여야의정 협의체 발족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이 여전히 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인데다 의대 교수들도 참여 의사를 보류하고 있다. 특히 KAMC·의대협회가 제시한 참여 전제조건에 정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23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KAMC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내건 △의대생 자율 휴학 허용 △2025·2026년 의대 입학정원 논의 △의사 정원 추계 기구 입법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독립성·자율성 확보 등에 대해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23일 두 단체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는 환영한다면서도 휴학 승인 등과 관련해선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고 나섰다. 자칫 어렵게 참여를 결정한 이들 단체가 명분을 상실하고 협의체 참여를 번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23일 입장문을 내고 “(두 단체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가) 현재의 의정 갈등을 극복하고, 의료 개혁이 한 걸음 더 진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동맹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며 2025학년도 학생 복귀를 전제로 한 휴학 승인 방침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휴학계 처리는 법령과 학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동맹 휴학은 정당한 휴학사유는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서 (승인)하겠다는 교육부 입장에 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의평원의 독립성·자율성 확보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의평원의 책무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사실상 수용거부 의사를 밝혔다.
교육부는 현재와 같이 학사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 의평원이 불인증하기 전에 의대에 1년 이상의 보완 기간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정부가 의평원을 무력화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두 단체의 참여 결정에 곱지 않은 시선이 의료계 내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정부가 의료계 제안을 모두 거부하고 사실상 백기 투항을 요구한다면 두 단체는 참여할 명분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료공백 사태의 핵심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이 올린 글에는 손정호·김서영·조주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박 위원장은 또 대한의학회와 KAMC의 협의체 참여 결정에 대해 “교수님들의 결정이 정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지, 혹여 제자들과 멀어지는 길은 아닐지 다시 한번 숙고하시길 바란다”며 “정치인들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의대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긴급총회를 열어 참여 여부를 논의한 결과 협의체의 구성과 운영이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참여 결정을 유보하기로 했다.
전의교협은 회의 후 보도자료를 내고 “(협의체는) 전공의와 학생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의료계 단체로 구성돼야 하며 정부도 의료대란을 촉발한 당사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적합한 인사가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의료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한 대한의학회와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협의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정부의 태도 변화 없이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일한 법정 의사단체인 의협도 “두 단체의 결정을 존중하며 응원의 뜻을 전한다”면서도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대한의학회와 KAMC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결정하자 기존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다른 단체들도 재논의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15개 의료계 단체·기관에 공문을 발송해 “의료 공백 해결을 위해 의료계 입장에서 충분한 발언과 논의를 보장하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문을 받은 15개 단체는 대전협, 의대협, 상급종합병원협의회, 대한병원협회, 수련병원협의회, 의협, 전의교협, 전의비, KAMC, 대한의학회, 빅5 병원이다.
이중 상급종합병원협의회와 수련병원협의회는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를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병원협회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참여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은 대부분 개별 차원에서의 참여는 아직 논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