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혁신 기업인 열전 ⑪ 조철희 비전바이오켐 대표
40년간 ‘효소’만 연구…수입판매에서 소재개발까지
산업현장 기술고민 해결, 맥주분야 국내시장 1위
창업 직후 손편지로 글로벌기업 설득, 판권 획득
7월 음성에 성본캠퍼스 준공, 식품소재 개발 본격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도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에 저성장까지 복합위기에 빠졌다. 미국-중국의 경제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한 가운데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기업의 도전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내일신문은 (사)밥일꿈과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 기업인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이쯤이면 숙명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후 40년 넘도록 한 길만 걸어왔다. 첫 직장에서 만나 창업까지 이어졌다. 앞으로도 걸어왔던 길의 확장판일 것이다. 칠순을 넘긴 조철희 비전바이오켐 대표의 인생은 ‘효소’와 함께 했다. 오로지 ‘효소’만을 연구하고 제품개발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효소의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섬유나 공업용 효소제를 수입 판매했다. 점차 실력을 키워 생물공학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을 뚫고 자리 잡았다. 지금은 맥주분야에서 국내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주요 맥주제조사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올 7월에는 충북 음성에 성본캠퍼스를 준공했다. 이곳은 식품산업 소재개발과 생산을 담당한다. 지난해 매출 446억원을 올렸다. 수출은 아직 미미하지만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제조설비와 기술력 확보 = “효소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고 산업에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없어서는 안될 소재다.”
최근에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조철희 비전바이오켐 대표의 첫마디는 ‘효소의 중요성’이다. 효소는 화학반응을 가속시키는 생물학적 촉매다. 촉매반응을 통해 화합물이 다른 물질로 바뀐다. 고온 고압 등 특수한 상황에서도 반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용분야가 넓어 산업용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효소가 가지는 기능의 다양성과 화학촉매의 사용감소로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실제 효소는 우리 생활과 산업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세제에 포함된 효모가 얼룩을 분해한다. 치즈는 우유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효소(렌닌)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효소는 약물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오염된 수질을 개선한다. 효소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생산은 일반화됐다.
비전바이오켐은 다양한 산업분야의 원료와 소재를 주문생산(OEM)하거나 개발한 제품을 공급(ODM)하고 있다. 효소 효모 프로바이오틱스 베이커리소재 조미소재 양조용소재 사료첨가제 미생물배지와 실험용 분석키트에 이르기까지 사업분야는 다양하다. 식품 미생물발효 사료 화장품 제약 등 산업에 꼭 필요한 원료와 소재들이다. 원료는 글로벌기업에서 제조한 우수한 소재만을 사용한다.
창업초기에는 섬유 농축과채류 주스 등에 필요한 효소제를 수입해 판매했다. 이를 취급하는 지금은 효소응용기술과 미생물 발효 천연소재에 대한 기술적 이해 바탕으로 기업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2004년 풍양발효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단순 판매에서 기업의 고민을 해결하는 기술영업으로 전환했다. 산업현장에서 부닥치는 기술적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은 물론 기업들과 함께 제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조 대표는 “액상과 분말 혼합설비를 갖추고 기업의 요구대로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축적된 효소 관련 기술이해와 경험이 경쟁력인 셈이다. 비전바이오켐은 300ℓ 500ℓ 1500ℓ 3000ℓ 규모의 미생물발효 탱크를 갖췄다. 미생물 발효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제조설비와 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기업들의 다양한 제품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특히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소재로 개발해 기업들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비전바이오켐은 효소산업 중소제조업에서 선두그룹에 자리잡았다.
◆효소의 미래 가치 알아봐 = 조철희 대표는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다. 이곳에서 효소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태평양화학은 수입 효소를 활용해 연구했다. 이후에 연구는 식품분야에 적용됐다. 8년을 근무하며 식품연구실장에 올랐다. 그는 배한산업(현 국순당)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실장을 맡았다. 이곳에서 양조용 효소 연구를 주도했다.
‘경제적 자유’는 직장생활 중에도 머리를 맴돌던 화두다. 2년만에 연구실장을 박차고 나왔다. 새로운 나만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효소였다. 주변을 보니 회사 대부분이 소규모이고 효소를 모르면서 영업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그는 1988년 효소전문기업 비전상사를 설립했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사업체질이 아니다”는 게 이유였다.
“효소시장은 작았지만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이고 기술자이기에 효소에 대해 남들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무모했다.”
조 대표가 창업한 시기는 효소산업 초창기였다. 대부분 해외 효소를 수입해 판매했다. 국내시장이 작아 제조는 수익이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는 효소연구나 산업적용이 초기단계인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포착했다.
효소제조 글로벌기업에 편지를 보냈다. 노력 끝에 글로벌기업으로부터 판권을 획득했다. 그의 초기 공업용 효소제를 시작으로 시장변화에 따라 빠르게 사업영역을 전환했다. 그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성실함이 비전바이오켐의 성장 동력이었던 셈이다. 칠순을 넘긴 지금 조 대표의 관심은 ‘지속가능성’이다. 젊은시절 바랐던 개인의 ‘경제적 자립’을 넘어 ‘임직원의 자립’을 이루는 게 그의 꿈이다. 지속가능성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이다.
“임직원이 모두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 효소시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어 미래는 밝다.” 조 대표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 퍼졌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