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디지털성범죄 예방, 분절적인 성교육으로 불가능”
청소년 유해 온라인 환경 등 급증, 성권리 제대로 아는 게 중요
피해자 아닌 가해자를 비판하는 사회라는 믿음이 견고해져야
“‘결혼 전까지는 성관계를 하면 안 되는 거 외에는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의 금욕주의적인 성교육은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청소년이 성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너무 많아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은 나한테 있는 거라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이현숙(사진)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16일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청소년 단체인 탁틴내일은 아동·청소년의 성가치관 확립과 건강한 성문화 조성이 가능하도록 인권신장을 위해 활동 중이다. 1995년 창립한 뒤 전문 성교육 센터를 설립하고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제정 운동 ●한줄로 서기운동 ●학교폭력예방법 제정 및 개정 운동 등을 통해 사회 변화에 함께 해왔다. 이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탁틴내일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성은 우리 삶과 함께 가는 존재예요. 자신의 성권리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줘야지만 청소년들도 신중하게 성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요. 포괄적 성교육은 생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교육 접근 방식이죠. 성병 예방이나 피임법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권리를 이해하고 건강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며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입니다. 유네스코는 2009년과 2018년 포괄적 성교육 지침을 발표해 전세계적으로 이를 시행하도록 권고한 바 있죠. 최근에는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효과적인 교육 방법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커지고 있어요.”
타인 권리 보호, 본인이 피해 보지 않는 길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 상임대표가 청소년 문제에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아이 때문이다.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던 그가 출산 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 형성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에 매진하게 됐다.
이 상임대표는 1998년 본격적으로 탁틴내일 활동을 시작했다. 탁틴내일은 전국 최초로 청소년성문화센터와 성교육 버스를 만들어 운영하고 청소년1388 핫라인 구축에 참여하는 등 청소년을 위한 상담과 지원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04년에는 엑팟(ECPAT·국제아동성착취반대협회) 한국지부로 가입했다. ECPAT은 상업적 아동 성착취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적 단체로 아동성매매 관광을 근절하기 위한 국제 시민단체다.
이 상임대표는 “인위적으로 막으려해도 잘못된 성관념의 매체들로부터 청소년들을 떼어놀 수는 없다”며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왜곡된 성관념에 길들여질 수 있고 이는 결국 자신이 피해를 보는 사회를 만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본인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육부의 ‘학교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 관련 청소년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도 모르게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 불안감에 떠는 청소년이 76%(최대 2개 중복 응답)나 됐다. 이어 ‘주변 사람이 가해자일 수 있어서’가 45.4%, ‘피해 시 대처 방법을 몰라서’가 29.7%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11월 5~27일 중·고등학생 214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사진이나 영상에 다른 이미지를 중첩·결합해 가공의 새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디프 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다.
미국 보안업체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3%다. 이 중 99%가 여성이다.
디지털성범죄, 문제 본질 파악해야 해결
“디지털성범죄는 최근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면 과거에도 있어왔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가 기술을 만나면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에 분절적인 교육으로는 예방하기 힘들어요. 기초교육 없이 심화문제풀이만 하는 격이죠.”
이 상임대표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어떤 게 되고 안 되는지, 호기심으로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을 때 어떠한 확장성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떠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 등 성과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성교육에 대해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과거와 달라진 환경으로 자녀 성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은 사교육에 의뢰하기도 한다. 이 상임대표는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손 잡아도 될까? -알 건 아는 10대들을 위한 성과 사랑’을 펴냈다. 이 책은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에서 ‘으뜸책’으로 선정했다. 어린이들의 성장 발달을 돕고 청소년들의 자아를 일깨우며 꿈과 이상을 키워주는 우수 도서로 평가받았다.
“아직도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주목하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사회에서 당당할 수 없는 문화가 정착돼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죠. 만약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존재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탁틴내일은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다. 1996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성교육센터로 불리는 ‘내일신문여성문화센터 부설 성교육센터’를 발족한 뒤 청소년 유해환경 퇴치운동과 청소년 성폭력 상담소, 찾아가는 성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1998년에는 ‘아우성(아름다운 우리의 성)’의 원년이라고 할 만큼 청소년 성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99년에는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해 체험형 성교육을 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로 거듭났다. 쌍방향 방식의 교육,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는 체험형 성교육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술 발달로 생산 소비 의사소통 등 모든 게 달라졌고 아동·청소년이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도 바뀌었죠. 법과 제도, 온라인을 비롯한 사회환경이 아동·청소년의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작동하는지 고민 중입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발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기업 등과 협업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청소년들이 ‘탁 트인 열린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