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내 학대 피해 숨기는 노인들

"자식이 때려도 참을 수밖에"

2021-08-09 12:42:24 게재

상습 폭행 당하면서도 진술 꺼려 … 학대건수 최근 4년 새 46% 증가

알코올 중독 40대 아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온 70대 아버지는 극구 아들의 범행 사실을 진술하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 자식을 신고할 수 있느냐고 버텼지만 경찰이 지속적으로 설득했고, 결국 가해 아들은 존속폭행혐의로 입건됐다.

노인학대 건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노인은 자식에 대한 걱정 또는 공포 때문에 피해신고를 꺼리고 있어 노인학대 대응체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학대 건수가 매년 급증하면서 노인학대 대응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모습.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8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노인 학대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2018년 1316건, 2019년 1429건이었다가 지난해에는 1800건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까지 1279건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79건)과 비교했을 때 45.5% 증가했다.

노인학대 급증 추세는 전국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노인학대로 판정된 건수는 6259건으로 최근 4년간을 비교해 보면 46.2% 가량 늘어났다.

노인학대의 특징은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로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학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노인학대 행위자는 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학대(13.0%)를 제외하고는 자식이나 배우자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학대에 대해 노인들은 신고나 피해진술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젊은 시절 과오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는 자책감, 신고했다가는 자녀 등에게 더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 자신이 받는 취급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대한 수치심 등이 걸림돌이 된다.

실제로 서울경찰청이 6월 15일부터 7월 말까지 노인학대 우려가 있는 가정 110곳을 대상으로 합동점검한 결과 소극적인 진술을 하는 경우가 여러 건 있었다. 조현병을 앓는 50대 딸이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었던 70대 어머니는 응급 입원 조치됐다가 집에 돌아온 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다시 입원시켜야 할지 여부에 대해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합동점검팀은 어머니를 설득해 딸을 입원시켰다.

노인학대 문제가 간헐적으로 제기될 때마다 국회에서 법률 개정 논의가 나오곤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노인학대범죄에 관한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대 국회 때 신고의무자를 확대하고 노인보호전문기관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인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에는 사망이나 상해를 발생하게 한 노인학대범죄 상습범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국회 들어서는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학대피해노인의 권리보호와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눈에 띄지만 4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된 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이 법안에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학대를 예방하고 피해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책무를 지도록 하고, 보건복지부에겐 노인학대 관련 실태조사와 예방교육 실시 의무를 지웠다. 그 외 학대피해노인 전용쉼터 설치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서울시와 노인보호전문기관과 연계해 지속적인 합동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점검에선 학대 피해 노인 24명을 보호 조치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노인학대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면서 "학대 예방을 위해 경찰과 서울시와 유관기관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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