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다른 삶에 허탈감 느끼는 청년들

누구는 취업스트레스에 정신과 치료, 누구는 아빠 소개 직장 들어가 퇴직금 50억

2021-10-05 12:58:45 게재

"어떤 부모 만났냐 따라 청년들 삶도 복불복

'그들만의 카르텔' 고착화된 구조 깨졌으면"

대장동 부동산개발 특혜 의혹과 함께 불거진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50억원 등을 보며 청년들은 허탈감을 호소했다.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한다는 압박감,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자기 이름으로 집 한 채 가질 수 있을지 까마득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 입장에선 곽 의원 아들이 받은 거액의 퇴직금, 박영수 특검 딸의 특혜 분양 의혹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022 대선대응 청년행동'이 29일 서울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의원의 아들 등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2022 대선대응 청년행동 제공

내일신문과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그들은) 우리하고는 출발선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달 말 서울 지역 4개 대학 게시판에는 곽 의원 아들 특혜 의혹에 대한 분노를 담은 글이 붙었다.

이화여자대학교 게시판에 대자보를 써붙인 A씨는 "의원님의 아들이 써놓은 글에는 억울함이 가득 느껴졌다"면서도 "(정작 더 억울한 사람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열심히 살아온 게 맞는지 하루하루 의심해야 하는 나, 우리 가족, 내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3일 익명으로 내일신문과 전화인터뷰에 응한 A씨는 대자보를 붙이게 된 계기에 대해 "(곽 의원 아들 이야기를 보며) 곧 정년 퇴직을 앞두고 퇴직금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해하시는 아버지 생각이 나고, 더 나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아등바등 사느라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친구 생각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곽 의원의 아들 곽 모씨는 지난 달 26일 입장문에서 아버지가 화천대유를 소개했고 "베팅해볼 만하다고 판단해" 입사했다고 밝혔다. 입사한 지 6년 만에 퇴직하면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데 대해선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선 돈 많이 번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곽씨는 마치 자기 능력만으로 거액의 퇴직금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힘도 포함돼 있는 것"이라면서 "솔직히 우리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시고, 내 인생에 아버지의 스펙을 이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고,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도 제대로 못 다녀보고 대학도 겨우겨우 오고,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던 동생도 먹고 살 길이 급박해서 전문대에 진학한 제 입장에서 (곽병채씨는) 이런 삶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싶었다"고 심정을 말했다.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자식의 삶도 달라지는 '복불복'이 고착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든다고 했다. A씨는 "사실은 부모 '빽'이 제일 중요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LH사태 때도 느꼈지만 그들만의 카르텔이 짜여 있는 사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 허탈감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상황에 오게 만든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청년도 있었다.

청년주거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지수 위원장은 "청년 회원들과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다들 박탈감 느끼고 허탈하고 황당해한다"면서도 "화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수 위원장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개발이익을 어떻게 다룰지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극소수가 이익을 가져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적어도 공공이 가지고 있는 땅에 대해서만이라도 질서를 잡아주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년들이 부모에게 충분한 자산을 받을 가능성이 점점 더 적어지다 보니 청년들의 삶이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복불복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면서 "청년들이 단순히 50억원에 대한 박탈감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이런 구조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대장동 특혜 의혹에 뿔난 2030세대] "내 집 마련은커녕 당장 취업하는것도 어려운데…"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