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노벨물리학상 120년의 교훈① - 과학적 큰 질문을 찾아라
지난 20세기는 물리학의 세기였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필두로 수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원자의 구조가 밝혀지고, 그 원자 속에 들어 있는 핵의 존재도 밝혀졌다. 그 핵을 이용해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소가 만들어졌다.
전파를 이용한 라디오와 TV가 나왔고, 이 전파를 통해 화성의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또 우주가 탄생한 먼 과거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의 발견은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탄생시켰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로 둘러싸인 시대를 살고 있다. 레이저는 산업에서 의료기기까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모든 것이 20세기 100년 동안 물리학에서 얻어진 혁신이었다.
20세기는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 세기이기도 하다. 1901년 X선을 발견한 공로로 뢴트겐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올해까지 120여년간 노벨상이 수여됐다.
매년 10월이면 우리는 혹시 대한민국의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지 않을까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해왔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일본이 매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국민적 감정이 꽤나 복잡해졌다.
물리학의 연구 분야와 노벨상
한국물리학회나 미국물리학회의 분류에 따르면 물리학의 연구 분야는 크게 10여개로 나뉜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나 우주를 연구하는 핵, 입자, 천체물리학 분야와 광학과 원자물리학, 그리고 반도체나 신소재 같은 물질의 물성을 연구하는 응집물질물리학, 통계물리학과 플라스마를 연구하는 분야, 또 응용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까지 여러 세부 분야가 있다.
노벨상이 수상되기 시작한 지 121년간, 전쟁 등을 이유로 수여가 없었던 6번을 빼면 지금까지 노벨물리학상은 총 115번 수여됐고 수상자는 219명에 달한다.
[표]를 보면 전체 노벨상의 절반 이상이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천체물리학 등 소위 고에너지물리학 분야에 수여된 것이 눈에 띈다. 반도체나 LED, 레이저 등은 인류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증진시킨 분야이므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고에너지물리학 분야는 오로지 지적 호기심에 의해 연구되는 분야로 여겨지는데도 노벨상이 집중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인류가 가진 크고 심오한 질문들에 답을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분야별 노벨물리학상 수상실적에는 큰 변함이 없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번의 노벨물리학상을 분석해보면,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 각각 5회, 반도체와 응집물질물리학이 4회, 광학이 3회, 원자물리학과 통계물리학이 각 2회, 응용물리학이 1회로 여전히 고에너지물리학 분야가 많다. 우리나라가 고에너지물리학 분야에 학문후속세대를 키우지 않는다면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일본은 어떻게 노벨상 강국이 됐나
1949년 유카와 히데키를 시작으로 2015년 가지타 다카아키까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인은 총 12명이다. 이들의 수상 업적을 분석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카와는 핵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양자전기역학을 만든 업적으로, 고시바는 중성미자 천문학을 개척한 업적으로, 고바야시와 마스카와는 쿼크섞임이론으로,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5년 가지타는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해 총 8명의 노벨상 수상 중 5번이 입자물리학이고 총 수상자는 7명이나 된다.
일본의 경우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패망 후 일본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에 고에너지물리학 분야에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이 유입되면서 그 성과가 2000년대까지의 노벨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경제가 한창 잘나가던 1980~1990년대에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형연구시설을 포함해 기초과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결과 2000년대 들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빅사이언스로부터 나온 노벨상들
그러면 대형연구시설로부터 어떤 노벨상들이 얻어졌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미국은 중력파의 발견으로 2017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는 라이고(LIGO)라 불리는 거대한 연구시설로부터 얻은 결과였다. 일본은 중성미자 연구로만 2002년과 2015년 두번의 노벨상을 거머쥐었는데 이는 카미오칸데라는 거대한 연구시설에서 수행된 실험이었다. 2013년에는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두명의 물리학자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는데, 이는 스위스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LHC라는 거대한 가속기 덕분이었다. 이들 모두 1조원에서 10조원의 건설비가 투자된 대형연구시설들이다.
그러면 이러한 거대한 연구시설 건설이 노벨상 수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일까? 대표적인 고에너지물리학 연구소에서 수행된 연구로부터 얻어진 노벨상을 조사해보면 그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일찍이 고에너지물리학을 위해 국립연구소를 건설했다. 그중 대표적인 5개의 고에너지물리연구소에서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만 27명이다. 아직까지 국립고에너지물리연구소가 없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대형 연구비만 투입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우리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이는 착각이다. 중력파나 중성미자, 힉스입자 등의 대형 연구는 그 실험을 수행하기 이전에, 이미 목표가 성취되었을 때 노벨상을 받을 것을 미리 알고서 시설 건설에 착수한 경우다. 즉 어떤 '과학적 큰 질문'을 해결할지가 먼저 정해지고 나서, 그 목적에 맞게 시설이 건설됐다.
결국 노벨상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해결해야 하는 '과학적 큰 질문'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방법이 도출돼야 하고, 마지막으로 연구 목적을 달성할 연구시설을 짓고 연구 수행에 들어가야 한다.
순서가 뒤바뀌어 우선 연구시설부터 짓고, 그 시설에 맞는 연구를 수행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추진해 온 연구 방식은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진정으로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면 이제라도 연구시설 건설방식과 연구지원 체계를 뿌리부터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